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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미네소타 거주 한 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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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에 온지가 한달이 지난 요즘의 생활은 마치 리틀포레스트의 김태리가 된 느낌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 김태리는 서울살이에 지쳐서 어머니와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와 지내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금 생활의 활력을 되찾아 나가는 모습이 나온다. 맛있는 음식도 해먹고 멍멍이도 한마리 키우고 친구들도 만나고 등등




지금의 내가 그렇다. 학부연구생을 포함한 3년간의 연구실 생활을 마치고 여기서 지내보니 그 영화가 절로 생각이 났다. 지금도 물론 연구실 출퇴근을 하기는 하지만, 훨씬더 자유로워진 연구실 생활과 근무시간은 오랜만에 이것저것 못했던 것들을 해보게 하고, 묵혀둔 생각들을 다시금 끄집어 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온전히 내것이 된 평일 저녁시간과 주말시간은 하루를 정리하고, 일주일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자리잡았다. 아 이것이 워라밸..! 공부를 하는 것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해먹고, 운동도 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 새삼 행복한 시간들이다.



그렇다고 마냥 행복하냐라고 물으면 부모님 지원 없이 나와 살고있는 것이기에 걱정도 안되는 건 아니지만 생존력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것저것 아껴보려 가계부도 쓰고 설문조사하면 돈주는 엠브레인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아, 머리도 혼자 깎았다. 여긴 싼 데가 한국의 두배쯤 되고, 좀 잘깎는다 싶으면 네다섯배는 비싼 것 같다. 잘보일 사람도 없는데 그 돈이면 집에서 서로인스테이크를 썰어도 두 번 반은 썰었겠다 싶어서 셀프로 깎았다. 주변에서 공부하러 간건데 반삭하거나 아예 길러라 했는데 그러면 여자친구가 영상통화 안받아 줄 것 같아서 깎았다. 세시간 좀 안되게 걸렸다. 미용실 갈 때마다 디자이너 선생님 가위질 빗질 눈여겨보던거 흉내내느라 고생좀 했다. 군데군데 빵꾸가 좀 나긴 했는데 봐줄만 한 것 같다.


또 여기는 외식물가가 워낙 비싸기에 강제로 집에서 해먹을 수 밖에 없고, 맨날 똑같이 먹을 수 없으니 유튜브를 선생님삼아 온갖 요리를 도전해 보고 있다. 백종원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다.


다행인 점은 이런 여러 요리를 섭렵하기 위해선 다양한 종류의 조리도구와 다양한 종류의 조미료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곳이라서 이것들이 다 갖춰져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사가거나 할 때에 가져가지 않았던 것들이 다 남아서 그런 것이리라. 우리나라 기본요리들에 들어가는 간장 고춧가루부터해서 우스터소스 굴소스 두반장 까지 없는 소스가 없다. 이런 여건은 바깥이 비싸서 안사먹는다는 생각보단 내가 더 맛있게 해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정도이며, 이런 환경은 최근 마파두부까지 해먹게 된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날이 추운 것도 한 몫 했다. 내가 도착하고서 바로 돌아오는 주에 기온이 영하 32도까지 곤두박질쳤다. 나에게 가장 추웠던 겨울은 의경 제대 전 마지막으로 중국대사관 앞에서 섰던 철야근무였는데 그당시 영하 11도에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였다. 근데 마치 여기는 '그게 추웠니?'라고 비웃듯 학교 휴교령까지 내리게 만들었고, 교내에서 주고받는 메일과 전화의 말미에는 stay warm, stay safe!가 인삿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한 번은 유심칩이 안와서 택배기사랑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의 인삿말도 stay warm이었다. 



이 정도의 기온이 되면 학교가 휴교를하고, 마켓에 물건이 공급되지 않는다. 바깥에 맨살이 5분만 노출되어도 동상에 걸리게 되는데 이를 frostbite라고 한다. 직관적으로 알아듣게 생기기도 했지만 그 추위를 겪어보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추위를 겪게 된 건 다름아닌 그룹미팅 때문이었다. 여기는 고정적으로 그룹미팅이 수요일에 있는데 가장추웠던날이 하필 수요일이었다. 그룹미팅 날짜조정을 건의했으나 교수님께서 다른날짜에 시간이 안된다셔서 수요일로 하게 해준 대신 점심 피자와 라이딩을 해주신다고 했다. 이름하여 Queber..(그의 성이 Que다). 아무튼 난 학교가 걸어서 15분이면 갈 거리라서 따로 얘기하지 않았는데 그 15분동안 후다닥 걸으면서 겪은 추위는 다리가 저릿할 정도의 느낌이 들정도였다. 

추웠던 그당시 뉴스기사




내가 걸어왔다는 걸 들은 내 멘토는 차를 태워주겠다며 그룹미팅후 주차장으로 갔으나 그의 차는 배터리가 방전이 되버린 후였고 먼저 가라는 그의 말에 다시 후다닥 집으로 왔다. 다음날 들은 얘기는 시동을 결국 못걸어서 하루 주차비 12불을 고스란히 내야했다고 한다. 교통비는 물론 별도. 나중에 알았다 여기가 자동차 극한환경 테스트하러 오는 도시라는걸. 


그래도 다행인건 최근들어서 기온이 많이 올랐다. 영하 한자릿수까지 올랐다가 이번주들어 다시 20도 전후로(물론 영하다) 왔다갔다 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닐만 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에 틀림없다. 


처음 온 날 밤에 집 침대에 딱 누웠을 때 한숨을 푹 쉬면서 하..내가 아직도 고생을 덜해서 이렇게 내돈써가며 고생하러 왔구나 싶었는데 요즘은 그런생각 안하려고 노력하며 재밌게 지내고 있다. 



바이올린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건데 여긴 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수업식으로 운영되어서 나처럼 수업안듣고 연구실 컨택으로 온 visiting scholar에게는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 물론 연습실 이용도. 그래서 이건 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날이 좀 풀리면 지역오케스트라를 기웃거려볼까 싶기도 하고..그래서 그동안은 음대 4학년, 석박사, 교수진, 졸업생 등 리사이틀이 주에 한두번씩은 있어서 그거 보러다녔다. 무료에 사람도 많이 안와서 거의 맨앞자리에서 현악기 현사이 크로싱하는 소리까지 들으며 감상하곤 한다. 주변에서 들은 말마따나 한국의 클래식 관람 연령이 훨씬 낮다는 것을 여기와서 느꼈다.


쓰고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일부러 일들을 만든 감이 없잖아 있다. 집에만 박혀있으면 돈내고 미국와서 우울증 걸릴까봐 그랬다. 그래서 술도 혼자서는 절대 안먹었다. 그러고보니 한달을 끊었더라. 연락한 사람마다 살빠졌단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술살이 있긴 했나보다. 앞으로도 혼자는 안먹고 연구실애들 먹으러간다고 할 때 맥주나 한잔 씩 할까 한다.


중간중간 한국 소식 접하면서 누구는 취직하고, 누구는 졸업하고, 누구는 복학하는 등 이런저런 좋은 소식들이 많다. 최근에 갤럭시10 나왔다고 뭐 기프티콘 이벤트 하던데 여기선 해당이 안돼서 당첨도 안된다. 여긴 한국만큼 이벤트가 자주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보니 sns도 눈팅만 줄곧 했었는데, 단어외우기 싫어서 몇글자 끄적이던게 이렇게 길어졌다. 종일 영어듣다가 한글을 보고 읽고 쓴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글 전쟁터에선 온갖 소리가 난무해도 마치 견자단처럼 휙휙 다 받아칠 수 있었는데 여기는 벽을 등지고 벌벌떨면서 한발 한발 쏴맞추는 훈련병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돌아갈 때 쯤엔 영어로 도술을 부려야할텐데..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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