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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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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돈은 행복한 생활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만약 이 문제가 어느정도 내가 만족하는 선에서 (남이 보기에 엄청 만족스럽진 않을지라도) 해결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지낼지에 대한 생각을 요즘하고 있다. 우선 화학을 계속 전공으로 하고 이에 관련된 직업을 결국에 찾아서 할 것이라면, 아마 좋은 옷을 매일 입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매번 좋은 옷들은 옷장에 넣어두고 작업복과 다름 없는 맨투맨 다섯개 (혹은 피케셔츠 다섯개)를 돌려입는 일상이 되었기에 굳이 좋은 옷이 많이 필요 없어져버렸다. 한국에서 입던 울, 캐시미어 등은 도저히 연구실에 입고갈 여력이 안되고, 끽해야 학회 때나 입는데, 그러면 옷의 수명이 늘어나고, 좋은 옷은 기본 5-10년 넘게 해지지 않고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이런저런 친구들도 많이 만나러 다니고 하면서 예쁜 옷들 사입는거에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혹은 미국에서는) 굳이 그럴 일이 많지 않으니 한국에서 해둔 옷질의 양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는 것이다.


옷 문제가 해결이 되면 식과 주의 문제가 남는데, 이걸로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탕진할정도로 외식 하는 것에 진심도 아니고 (이 동네 레스토랑은 다 돌아본 것 같고, 굳이 매주 얼굴을 비추며 회전문 돌듯이 방문해야할 레스토랑을 찾지 못했다), 1-2주에 한 번씩 나가서 사먹는 정도로 가계가 휘청이진 않으니 이것도 해결된 것 같다. 집 문제는 월세가 다달이 나가긴 하지만 미국인들 평균만큼 내는 것 같고, 집 크기도 투베드에 조용해서 내가 하고싶은 걸 하면서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돈이 더 있다면 전자피아노 대신 어쿠스틱을 놓고 싶고, 집에 노래방 기계도 들여놓고 싶은 생각들이 있으나 이게 없다고 매일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그냥 가끔 생각나는 정도다.


이렇게 보니 의식주가 어느정도 해결된 것 같다. 크게 목돈 나갈 일이 없이 꾸준히 저축하면서 지낸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가끔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을거고, 나름의 사치로 고급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해먹거나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서 기념일을 축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제 취미생활을 열심히하면서 지내면 되는건가? 싶다. 연구실 나가서 열심히 연구하고 퇴근하고 와서 저녁먹고 책을 보던지 티비를 보던지 하다가 다음날을 맞이하는 그런 일상이 이제 은퇴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아이를 낳게 되면 더 다채로워질 것 같지만 큰 일상의 틀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삶이 격정적으로 몇 년 주기로 파도가 치다가 이제는 좀 잠잠해진 느낌이다. 이런 고민이 생길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초중고 시절이 지나가서 입시를 거치고 대학생, 군대, 석사, 교환학생, 이제 박사과정까지 마치려고하니 이제 위치만 바뀔 뿐 내가 남은 삶을 뭐하고 살지가 대충 정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학부 때 유리초자 깨먹던 내가 이제 온갖 기술을 섭렵해서 더 새로운 화학을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화학을 전공으로 하는 입장에서 꾸준히 뭔가를 발전시키고 도전해볼만한 영역이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으나, 아마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은 연구를 하면서가 아니라 그 이후 남는 시간에 대한 쓰임인 것 같다. 태생이 워커홀릭인건지 이제 퇴근하고 와서 저녁먹고 가만히 유튜브 보는 것도 재미없고 켜놓고 폰을 만지기 일쑤인데 뭔가 더 재밌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고민이 생기니 이렇게 별 생각이 다 드나보다. 지인들은 야구경기를 보러 가거나, 축구 경기를 보러가거나, 뭔가를 하러가는데 최근에 오케를 끝장나게 못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축구를 안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몸을 더 써야 이런 고민이 사라지려나 싶다. 한창 한국에서 오케할때는 나중에 레슨 계속 받아서 독주회까지 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어느새 그 열정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월요일마다 하는 오케수업도 헉헉대며 하고 있으니 체력부터 길러야 할까 싶기도 하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몸을 만들어보자 하는 목표를 세워볼 수도 있겠다. 저녁먹고 퍼지면 유튜브 보는 것 밖에 안되니 머리로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다이어트랑 운동을 하려다가도 어느새 군것질을 하고 운동을 슬그머니 끊는 내 자신을 발견하니 아마 이게 오늘 글을 쓰는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이 이상하지만 더 체력을 길러서 내가 기존에 하고 싶었던, 혹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찾아서 깊게 파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그게 운동일 수도 있고, 내 버킷리스트 (이제 100개를 향해가는) 중에 있을 수도 있고 뭔가 퇴근하고 찾아서 열심히 몰두할 만한 뭔가를 찾아야겠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간 모두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뿌듯한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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