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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달라스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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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한 시간 만에 비행기 환승을 하려니 궂은 날씨에 속수 무책이었다. 우선 비행기가 착륙 하는데에 20분이 더 늦어졌고, 이후에 터미널 게이트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더 늦어졌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씨에 모든 과정이 더뎌진 탓이다. 사실 한 시간 환승은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을 때 가능한 환승 시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지난 번에 이게 가능했던 것도 내가 지지리 운이 좋았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마 다음 비행기가 딜레이 됐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전하게 타고 왔던듯 하지만 이번엔 칼같이 정시에 출발하는 것을 보고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탄식할 수 밖에 없었던 순간



몇 명의 직원만 남은 게이트에서는 아메리칸에어라인의 고객센터로 가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라는 공허한 안내만 해줄뿐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만 궂은 날씨의 희생양이 아니었으니, 표정이 잔뜩 굳은 다른 비행기 승객들이 이미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었다. 줄을 서서 당장 가능한 비행편을 찾아보니 일본하네다를 거치거나 미국 LA로 가서 인천행을 타는 비행기가 가능해보였다. 하지만 대기열이 줄어들어 내가 고객센터 직원을 눈 앞에 마주했을 때는 이미 세 시간이 지난 뒤, 이들 항공편이 모두 출발한 뒤였다. 다음으로 가능한 항공편은 내일 같은시간 비행기란다. 이거라도 감지덕지라며 직원의 말에 수긍하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하는 상황이라니. 바우처라도 줘야하는거 아니냐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기상관련 딜레이는 어쩔수없다며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이 상황에 오랜만에 강한 무력감을 느꼈다. 이처럼 무력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내 기억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마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긴 했어도 이렇게 긴 시간, 적게 잡아도 21시간 딜레이 된 적이 없었다. 이 상황의 문제는 내가 화풀이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것이 완벽하게 어긋난 이 상황에 누구하나 실수한 사람 없이 오로지 태풍이 불어서 이모양이 된 것이고, 내가 하늘에 소리를 지을지언정 기분이 나아질 일이 아닌 것이다. 굳이 탓을 하자면 이런 타이트한 스케줄 비행기를 예매한 내 탓이다. 차라리 돌아가더라도 시카고로 가서 인천행을 탔다면 비행기 연착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엔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해볼 일이고 당장 내가 화가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분을 삭히려 텍사스의 자랑 왓어버거를 먹으며 차분히 다음을 생각해보려 했다. 그러나 공항에서 있으려니 21시간 노숙은 한국 가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하루 자야하니 예정에 없던 돈을 지출해야해서 화가 제곱으로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랴 노숙은 못하니 부랴부랴 호텔을 알아봐서 근처 하얏트를 잡았다. 비행기 긁으면서 새로 판 신용카드 포인트를 긁었다. 포인트로 긁으니 기분이 좀 나았다. 현금으로 긁었으면...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렇게 비가 오더니 너무도 맑아진 저녁



불행 중 다행으로 호텔에 도착하고부터는 다 잘 맞아떨어졌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개었고 (저녁 구름이 고래모양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호텔 라운지의 비리아니 타코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으며, 호텔 방은 깨끗해서 푹자고 다음날 비행기까지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나머지 스케줄도 거의 아무탈없이 소화했고 말이다. 지금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생각해보니 그 때 분노의 감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냥 무용담 하나 늘었다는 정도로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나중에 어떤 기계가 발명되어서 (이름은 희노애락 레코더로 하면 좋겠다) 어떤 이벤트에 내 기쁨, 분노 등의 레벨이 어땠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아마 이번 사건이 거의 손에 꼽는 분노 레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 감정이 휘발된 것은 다행이다. 나중에도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재빨리 날아가길 기도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행기는 이런 타이트한 스케줄로 예매하지 않기로 교훈삼아본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란 호텔에서의 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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