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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박사과정 함께하기

[박사과정 일기] Grad student 에서 Ph.D. Candidate로! 박사과정 Qualifying exam / Prelim Exam 후기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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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미국에서의 박사과정은 크게 Prelim을 통과하기 전과 후로 갈린다. 이 시험은 박사과정 적격시험이라고 해서 Qualifying exam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퀄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Preliminary Examin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학교에서는 Prelim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부르겠다.
3년차 시작과 함께 치러야 하는 이 시험은 TA도 끝나고 RA로 넘어와서 아무 스케줄 없이 종일 랩에만 머물다 가는 나의 느슨해진 박사 생활에 긴장감을 심어주는 시간이다. 내가 그동안 박사과정을 잘 해왔는지, 이 사람이 박사과정을 앞으로 잘 진행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종합적으로 커미티가 판단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림 전 practice talk에서 받은 코멘트들


문과 전공은 잘 모르겠지만 이과는 자신의 실험 데이터등을 얻어나간 과정, 데이터의 분석과 해석, 방향성 등을 고려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론에 대한 숙지 여부가 판가름 나고, 이론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으면 왜 부합하지 않는지 등의 고찰 능력등도 보이게 된다.
특히나 지도교수님을 제외한 다른 그룹에서 온 커미티 멤버는 그들의 관점에서 나의 연구를 바라보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되었다. 같은 그룹에서는 두 세번씩 연습을 애들 모아놓고 해도 보지 못했던, 지도교수님마저 지적하지 못했던 포인트들을 짚어서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데 자신 나름대로 생각했던 점들을 조리있게 잘 말하는 것이 이 시험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시험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I don't know는 가장 최악의 답변이며,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자신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요구된다. 아무 말이나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얼만큼 내가 결과에 대해서 치밀하고 깊게 생각했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내 발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7시 30분쯤 학교에 와서 발표준비하고, 8시에 발표할 세미나실 문 열고 컴퓨터 세팅하고 커피랑 물 준비하고 하니 금세 9시가 되었던 것 같다. 이어서 커미티가 들어오고 시작했는데 이메일로만 커미티를 요청했던 교수님도 계서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했다. 발표는 기본 45분 분량으로 준비를 하고, 중간중간 커미티 질문에 답변하다보면 1시간 30분가량이 훌쩍 지나게 된다. 아마 나도 그쯤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이번 발표를 하면서 커미티는 나를 시험에서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를 놓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여러 관점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데이터 하나에 끙끙대는 나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몇몇의 질문은 시니어들도 좋은 질문이라고, 자기도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결국에 발표를 끝내고 커미티가 통과 여부를 결정할 동안 한 5분 쯤 밖에서 기다린 것 같다. 흔히들 5분이 한시간 같았다 라고들 표현하는 그 시간이었다. 탈락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리한 답변이 생각만큼 조리있게 느껴지지 않아서 불만이기도 했다.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던 와중 지도교수님이 밖으로 나오셔서 Congrats Jubyeong, you passed! 라고 하며 악수를 청하시는데 얼떨떨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교수님들마다 한 마디씩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 앞서 내가 생각했던 부족한 점들을 콕콕 집어서 알려주시고 격려해주셨다.
가장 인상 깊었던 코멘트는 기존 수업 등에서 배웠던 지식이 너의 다음 연구를 위한 엔진이 되어서 나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이론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웃으면서 받아칠 수 있을만큼 자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지식 기반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튼튼한 이론적 바탕을 두고 새로운 데이터를 얻었을 때 이게 내 예측과 맞아 떨어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교수들이 박사과정의 학생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실험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할지, 이를 토대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박사에게 요구되는 조건인 것이다.
학부와 석사과정을 하면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진지하고 깊은 통찰력을 요구했던 시간이었다. 실험기구를 다루고,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뽑아내는 테크니션에서 이제 한 명의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은 확실히 녹록치 않은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오늘 받은 깊은 자극을 잘 마음에 새겨두고 박사과정 마무리할 때까지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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