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에 낯선 일리노이 땅에 발을 내딛은지 1년 6개월 정도가 지났다. 학기로는 4학기를 마쳤고 이제 3년차로 접어드는 여름방학의 중간에 있다. 그간 바빠서, 혹은 내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글을 쓸만한 적당한 동기가 없어서 안썼는데, 날씨 좋은 일요일에 집안일을 일찌감치 마치고 시간이 좀 나니 글이 좀 쓰고 싶어졌다. 그러고보면 글이 쓰고 싶어지는 적당한 동기는 아마 피곤하지 않은 주말아침과 커피가 아닐까 싶다.
이번 여름방학, 그리고 5학기는 많은 일이 있을 예정이다. 여름 친구들과 만날 올란도 여행을 앞두고 있고, prelim exam (qualifying exam)도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prelim exam이겠다. 내가 남은 박사과정 기간 연구를 계속 진행할 자질이 있는지 보여야하는 시험이 prelim exam이다. 장학금을 들고 오지 않는 이상 월급을 받기 위해 해야하는 2년 간의 TA를 마치고 5학기 RA로 접어들면서 풀타임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게 될텐데, 내가 적격하지 않으면 굳이 박사과정을 계속 시켜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 입장에서도,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도. 전공에 따라, 학교에 따라서는 자기가 했던 연구 + 앞으로의 방향을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으로만 끝내는 경우도 있고, 여기에 전공과목 시험을 더해서 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프레젠테이션으로만 진행을 하고, 여기서 커미티의 승인을 받으면 남은 기간을 졸업 논문 준비를 하며 연구 진행이 가능하다.
내가 있는 연구실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통과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 빠른 시일내에 재발표를 통해서 승인을 받거나 아니면 학교 or 연구실을 옮겨야한다. 박사과정 중에 가장 가혹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Doctor 타이틀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보여야하는 것이니까,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보여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다행히 지도교수님께서 아직 나를 자르지 않은 것은 내가 prelim에 들어갈 자격은 되었다는 의미겠다. 아니면 일찌감치 너는 박사과정을 잘 마칠 것 같지 않으니 master out을 하라고 권유하셨을테니 말이다. 이미 석사 따고 왔는데 여기서 하나 더 받아봤자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안그래도 여름방학을 맞아서 교수님과 여름 방학 계획을 논의할 시간이 있었는데, prelim 관련해서 말씀 하시기를 'you have plenty of data, what is important is a good story. ...' 라고 하셨다. 차근차근 남은 시간 준비 잘해서 발표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 외에는 삶이 평화롭다. 특별히 자극적인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캠퍼스는 조용하고, 크게 스트레스 받거나 마음 쓸 일이 없다. 서울에 있었으면 여러가지로 연구 이외의 부분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을 것 같은데 여긴 그런 요소가 많이 없어서 좋다. 근처 여행지라고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하니 차가 없는 나에겐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연구에 좋은 곳이 틀림 없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선 진짜 오케에 미쳐있었던 것 같다. 거의 주말에 바이올린, 오케에 모두 쏟아부었던 기억이 대부분인걸 보면 여기와서 한동안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치고, 술먹느라 바빠서 거들떠도 안보던 요리, 축구, 수영 등을 하게 된 것도 기쁘게 생각한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내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서울에선 오케활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런 부분을 채웠다면 여기서는 나 혼자 하는 여러 활동들에서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박사과정을 마칠 때 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궁금해진다. 아무쪼록 prelim 무사히 마치고 이번 연말은 한국에서 보내는 것이 올 해 가장 큰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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