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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추천] 우리들, 어린 시절을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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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어떤 경로로 '우리들'이라는 영화가 재밌었다는 걸 보고서 봐야될 영화 목록에 넣어뒀다가 까맣게 잊고, 혹은 다른 개봉작들을 보느라 뒤로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나니 진작에 봤어야 했는데 너무 미뤄왔단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 영화였는데요. 잔잔하면서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그러다가 마지막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명쾌한 그 나이대의 해답까지 얻게 되는 영화입니다. 추천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선과 한지아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이선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는데요. 선이는 친구들에게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거기에 순진하기까지 해서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친하게 대한 것에도 웃으며 방학식날 교실 청소까지 혼자 다 하는 착한 아이로 묘사됩니다. 

청소를 마치고 선이는 새로 전학 온 지아를 만나게 됩니다. 방학식날 전학을 와서 선이 말고는 아무도 모른채로 다른 학교로 온 지아는 선이와 금세 단짝이 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즐거운 방학을 보냅니다.

아버지는 공장에, 어머니는 분식집을 운영하시는 선이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긴 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신 지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4학년 친구들은 서로 못 꺼냈던 이야기를 공유하며 더 가까워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개학날이 가까워오자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지아는 선이를 점점 멀리합니다. 보라를 비롯한 새로운 주류세력과 어울리게 되면서 말이지요. 개학하고는 반가워하는 선이의 인사를 뒤로하고 다른 친구들과 훨씬 친하게 지내는 모습에 선이는 놀라면서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며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지아는 일방적으로 선이를 피하고 나중엔 생일에 찾아온 선이에게 거짓말로 둘러대다가 생일파티 현장을 발각당하기에 이르지요.

큰 충격을 받은 선이는 다시 외롭게 지내다가 엉겁결에 다른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에 등록하게 되고, 시험을 지아보다 못 봐서 슬퍼하는 보라와 친해지며 지아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하지만 선이가 지아에 대해 털어놓은 비밀은 삽시간에 반 친구들에게로 퍼졌고 결국 선이와 지아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 또한 주류세력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그렇다고 다시 쉽사리 붙지는 않습니다. 갈등은 선이가 늘 술을 입에 달고 사시는 선이의 아버지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지아를 만난 이야기가 교실에 퍼지면서 정점을 찍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는 소문이 반에 돌고, 칠판에 써진 것을 바라본 선이는 이 사건을 어머님께 속 시원히 털어 놓지도 못하다가 애꿎은 아버지의 소주병을 깨다가 상처만 입고 말지요. 결국 사건은 점점 더 커져서 담임 선생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아이들이 다같이 혼나는 것으로 일단락 되는 듯 하였으나, 참다못한 선이가 지아의 가정사를 반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공개하면서 결국 둘이 치고받으며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선이는 새벽에 피곤한 엄마 대신 김밥을 말다가 동생에게 묻습니다. 맨날 레슬링 하던 그 친구랑 아직도 왜 만나냐고. 네가 더 많이 맞았으면 그대로 갚아줘야지 왜 더 안때려주냐고. 그랬더니 동생이 말합니다.

"그러면 우린 언제놀아?"

라고요. 걔가 나 때려서 나도 걔 때리고, 또 걔가 나 때리면 그럼 언제 놀아? 라고 다시 되묻습니다. 우문에 현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소한 갈등에도 서로 손절을 외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은 메세지를 영화에서 가장 어린 친구가 전달하는 모습이 사뭇 새롭기도 하고, 듣고 나서 잠시 멍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입니다. 치고받고 싸우는 갈등도 그 때 뿐이고 다시 재밌게 놀던 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었을텐데, 어느새 우리는 멍이 들도록 싸우지 않았음에도 쉽게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현답을 들은 건 우리 뿐만 아니라 선이도 맞은 편에서 들었지요. 다음날 있던 피구 시합에서 금 밟았지 않냐며 지아를 나무라는 다른 친구들의 비난어린 목소리를 선이가 맞받아쳐줍니다. 내가 봤는데 지아 금 안밟았다고. 바로 뒤에 공을 맞아서 밖으로 나오긴 하지만 선이와 지아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사뭇 다르게 보이며 영화가 끝이 납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그렸지만, 전달하는 메세지의 무게가 사뭇 무겁습니다. 마지막 선이의 동생이 답을 내놓기 전까지 성인이 된 우리들이 보기에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나는 예전에 어땠지?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기에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내가 어린 시절에 친구들에게 상처줬던 적은 없었나, 그 때 나는 갈등을 잘 해결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봤습니다. 

또한 자연광을 활용한 영상미도 훌륭해서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봤습니다. 

또 하나, 선이와 지아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을 하나 심어뒀는데, 다 눈치 채셨겠지만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입니다. 마치 RPG 게임의 HP를 나타내듯 붉게 물든 손톱은 점차 새로 돋아난 손톱에 의해서 자리를 넘겨주고 아무것도 없는 손톱이 되어갈수록 둘의 갈등은 점점 깊어집니다. 둘 사이 관계의 애정도가 점차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 와중에 심지어 보라가 매니큐어까지 나눠주며 하늘색을 위에 덧칠하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갈등이 회복되지 않나 싶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들의 갈등은 봉숭아 물이 다 지워지기 전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며 끝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이 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스릴러를 물론 1순위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더더욱 장르에 상관 없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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