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단원들마다 주먹인사를 건네시더라니 윌슨 응 지휘자의 정기연주회 데뷔였다고 한다. 일전에 동네음악회에서 그의 모차르트를, 온라인 콘서트에서 그의 베토벤을 듣고 다분히 인상적이었언 기억이나서 그의 쇼스타코비치는 어떨지도 궁금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주였다. 열정 넘치는 지휘속에 살리는 다이나믹과 날카로운 큐사인은 그 손길을 따라 여러 솔로파트들에 눈길이 가다가도 다시 그의 지휘로 눈돌리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단원들은 칼을 갈고 나온 듯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금관, 타악은 일전의 취소된 연주들에 분노한것처럼 불을 뿜었는데 마치 3악장까지 쉬다가 4악장에 나오는 베토벤 5번의 트럼본주자들을 보는것 같았다. 현악기의 탄탄한 베이스 아래에서 펼치는 시원시원한 울림이 이렇게 반가울수가.
협연자인 에스더 유의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연주 전 예습할겸 유튜브에서 그녀의 영상을 찾아보려했으나 마땅한 것이 없어서 어떤 연주자인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니 또 한 명의 기억해두고 싶은 멋진 연주자를 알게되었구나 싶었다. 프로그램인 글라주노프협주곡은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등의 협주곡에 비해 대중적인 협주곡은 아니지만 볼거리가 많아서 그녀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삼엄한 방역 때문인지 마스크를 쓰고 연주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아쉽기도 했지만 연주 자체가 훌륭해서 오히려 다음에 마스크 없이 보는 연주가 기대될 정도이다.
알고보니 그녀는 2월 쇼스타코비치 10번 연주회 때 이미 글라주노프를 연주할 예정이었다. 반 년 넘게 지난 오늘에서야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이 얼마나 짜증나고 화가날지 가늠조차 안되지만 끝나고 앵콜을 소개하는 감격어린 목소리에 담긴 그간 받았을 스트레스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녀의 연주는 개인적으로 오늘의 베스트였다. 에너지 넘치게 표현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연주가 일품이었다. 앵콜이었던 사라방드는 살얼음낀 냉면을 먹고 온육수로 속을 달래듯 따듯해서 2부의 쇼스타코비치로 가는 길을 예열해둔 느낌이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1번은 그가 열여덟살 때 작곡한 음악원 졸업작품이라고 한다 (글라주노프가 그의 스승이었던 것도 오늘 알았다). 윌슨 지휘자 말마따나 천재가 맞나보다 싶었다. 난 열여덟에 뭐했..아니다. 아무튼 5번을 비롯한 그의 원숙한 작품들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장난기어린 화성이며 이곳 저곳에서 나오는 솔로들, 화려한 스케르초, 웅장하고 화려한 마무리를 들으니 터미네이터가 미래를 바꾸러 과거로 돌아와서 어린 존코너를 봤을 때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오, 너 어릴 적 그대로 컸구나!
좋은 연주도 연주지만 서포터즈 담당자님께서 마련해주신 자리에 덩달아 협연자 및 지휘자와 사진도 찍고 대화나눌 영광을 누려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에 손 들어달라는 윌슨 지휘자의 제안에 글라주노프에 조심스레 손 올리긴 했지만 교향곡을 못했다는 뜻이 아니니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제 시향의 올해 연주는 여섯 번쯤 남았는데, 오늘 오랜만에 듣고나니 샷추가 아메리카노를 먹은 듯 심장이 콩닥콩닥하다. 나의 카페인이자 도파민이자 타우린 서울시향. 나머지 연주 모두 취소없이 합창까지 쭉 올 한해 쌓인 피로 날려줬으면 좋겠다👍
#서울시향 #서울시향서포터즈 #윌슨응 #에스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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