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11월 첫 정기연주회를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신동훈의 사냥꾼의 합창,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종신악장인 이지윤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그리고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이었다.
1부 첫 곡인 신동훈의 사냥꾼의 합창은 처음 보는 편성에 다채로운 악기적 효과가 가미된 곡이었다. 메인 선율이 잘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타악기 주자가 부지런히 팀파니, 심벌, 실로폰 등 이런 저런 타악기를 옮겨가며 연주하는 것이 돋보였고, 첼로, 베이스 등의 악기도 몸통을 손으로 치며 연주하는 등 눈이 즐거운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어진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도 굉장히 재밌게 들었는데, 그녀가 준비한 카덴차가 여러 음원에서도 못듣던 카덴차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곡은 고전곡인데 카덴차는 낭만의 협주곡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함이 있었다. 이걸 아무렇지 않은 듯 연주하는 모습도 감탄이 나올만한 부분이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교향곡이었다. 벤스케 지휘자의 연주는 지난 말러 2번 때 봤어야 했으나,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못봤던터라 매우 아쉽게 느끼던와중에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었다.
보통 나에게 자극적인 교향곡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작곡가의 곡을 떠올리지 멘델스존은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멘델스존의 작품들은 격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선율을 잘뽑는, e minor의 대표주자같은 느낌이 나에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의 4번 심포니, 핑갈의 동굴 서곡 등 현악과 목관을 위주로 돌아가는 멜로디는 앞서 언급한 다른 작곡가들의 금타악 빵빵한 그것들에는 못미친다는 생각도 고정관념처럼 하고 있었다.
몇년 전 들은 코리안심포니의 멘3은 그런 고정관념을 강화시켜주는 연주들 중 하나였다. 그 때도 들으면서 아 예쁜 선율 많네 서정적이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벤스케 지휘자의 지휘로 만난 멘3은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들을 느끼게 해준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니 이게 이런 곡이었나? 싶었다. 음원세계에선 밋밋하던 내가 실황연주에선 기립박수를? 같은 느낌이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을 들으며 도대체 플로렌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며 궁금해 했던 것처럼 도대체 스코틀랜드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물론 이런 '자극적인' 연주는 내 취향이라 더욱 극찬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 자극적인 연주는 단원들의 큰 협조또한 필요한 법이다. 복잡한 패시지를 소화하면서도 그 안에서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디 쉬운일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그가 이끄는 몸짓에 파도처럼 움직이는 단원들이 보여주는 연주는 찰지다 못해 쫀득쫀득 했고, 내가 선율의 파도 한 가운데에 놓인 돛단배라도 된 양 휩쓸려서 넋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활은 저렇게 쓰는거지' 하는 감탄도 함께 말이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 프로연주자입장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오케를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지휘자가 내 쪽을 바라보고 팔을 흔들면 비브라토가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던가 활을 조금이라도 더 누르면서 소리를 뽑아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 벤스케 지휘자도 조금이라도 더 선율을 뽑아내려는 듯 부지런히도 이쪽 저쪽을 향하고 방방 뛰며 곡을 이끌어 나갔고, 몇 번쯤 눈 앞에 번스타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던 것 같다. 그 와중에 그가 팔을 내리고 중간중간 퍼스트 바이올린에 선율을 맡긴 3악장은 이전에 들었던 연주를 떠올리게 만들만큼 아름답기도 했다. 이렇게 연주내내 여러번의 감정의 골짜기들을 넘어서 만난 화려한 피날레는 앞선 내가 가진 멘델스존 교향곡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었다. 정말 멋진 연주 잘 들었고, 열심히 연주해주신 연주자 분들 께도 이 글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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