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을 붙인다고 한다. 본가 이사를 앞두고 집 정리를 하다가 별 생각없이 튀어나온 말이 은근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을 붙인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 어디에 내 정이 달라붙은걸까 생각해보니 주변 풍경에 붙이는 것 같았다. 주변 풍경에 내 기억을 덧붙이는 것. 그게 정을 붙이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에 우리 기억을 저장해두곤 한다. 비단 현대 과학기술로 얻은 핸드폰 갤러리 속의 사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듣던 음악, 혹은 익숙한 향기, 심지어 꿉꿉한 날의 습도 같은 것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말 내 주변 오만가지에 담아둔 기억들이 생각날 때마다 생각보다 내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보통 정을 붙인다는 표현은 우리가 장기간 머물렀던 장소에 붙이곤 한다. 앞서 언급한 다른 것들에 정을 붙인다는 표현은 뭔가 낯선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새로운 집으로 가는 길, 집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아침, 점심, 저녁에 보이는 풍경의 차이 등. 처음엔 모든 것이 생경하다가 어느 순간엔 이게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우리집 풍경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통학하다가 기숙사에서 살았을 때, 군 생활 하다가 전역하면서 부대를 떠날 때 등, 최근에는 미네소타에서 1 년간 지냈을 때도. 처음엔 정말로 무섭고 어떻게 지내야 하나 막막할 뿐이었는데,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되돌아보니 주변의 음식점, 마트, 공원, 학교 등등 은근히 내가 발품 팔아가면서 다녔던 곳들이 생각보다 정겹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내면서 '아 이런 분위기가 괜찮네' 하는 그 곳만의 장점을 나도 알게되고, 즐기게 되는 것. 그렇게 외식하러, 산책하러, 갖은 이유로 드나들면서 익숙해진 주변을 떠날 때 드는 생각이 '정 붙였던 곳'이 되나보다.
정 붙였던 곳은 나중에 가면 그 당시 기억과 현재 변한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을 교차하게 만들곤 한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계속 정을 붙였다가 떼었다가 하며 느끼는 생각들이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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