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 표현중에서 안좋은 뜻으로 쓰이는 것 중에 하나가 '유난 떤다' 라는 말일 것이다. 굳이 대단한 노력을 안해도 될 것 같은 일에 지나치게 세심하게 대해서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에 하는 말이니 뉘앙스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친 디테일에의 강요를 아니꼽게 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요즘에 드는 생각이, 세상은 그런 유난 떠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꿔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유난 떠는 것의 반대는 아마 적당히, 지나치지 않게 정도가 될텐데 이런 표현들이 어떤 일에 대한 성과를 내는 입장에선 반가운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디테일의 차이에서 승부가 나는 것이 요즈음의 시대 흐름인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보니 차라리 유난을 떨어야 험난한 세상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게 아닌가 싶다.
인공적으로 장미향을 만들어내는 경우에,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이 섞여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딱 맡았을 때 '아 장미!' 라고 뇌리에 각인 시키는 물질은 세 가지 정도면 된다고 한다. 근데 이 장미향이 다이소 방향제 칸으로 가느냐 록시땅 핸드크림으로 가느냐는 여기에 얼마나 더 유난을 떠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더 미묘한 향들을 집어 넣게 되면서 실제 장미향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디테일에 신경을 쓰느라 직원들을 그렇게 피곤하게 만들었고, 아이폰을 탄생 시킨 것이 아니던가. 직원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면 진작에 아 저 CEO 정말 무지하게 유난떤다 라고 비난했을지 모른다. 근데 결국 여기서 갈리니까 수 많은 고객들이 애플을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터클래스 영상들을 봐도 그렇다. 분명히 처음에 어린 전공생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오 진짜 잘하는데 싶다가도 옆에서 대가가 손짓 발짓에 소리까지 질러가며 알려준 표현들이 하나 둘씩 장착되고 나면 '오 잘하네' 정도에서 심금을 울리는 연주가 되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누군가는 유난을 떨어야 한다.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눈에 띌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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