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접하게 되는 계기는 참으로 다양한데, 최근유아인의 나 혼자 산다에 나오면서 방에 있던 책 목록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글 잘쓴다고 생각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생각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해서, 그의 책 리스트가 흥미로웠는데, 여기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알게 되어 마음 이라는 소설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읽고 나보니 술술 읽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묘사가 구구절절히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최근 하트시그널3를 정주행 하기 시작하면서, 20세기의 사랑과 21세기의 사랑이 이렇게 다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했다.
'마음'을 읽으며 느낀 20세기의 사랑은 애절한 짝사랑에 가까운 것 같다. '선생님' 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마지막 자서전 같은 편지에서 나타나는 하숙집 아주머님의 딸 (이후 그의 아내가 되는)에 대한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말을 아끼는 선생님과 K,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K의 결말은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이긴 했다. 마음에 품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살을 할 정도라니, 이 감정의 깊이를 21세기에 사는 입장에선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것이 20세기의 사랑인가 싶었다. 요즘의 연애는, 사랑은 적극적으로 대시해보고, 많이 만나보고 좋은 사람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선생님이 따님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진즉에 마음은 있었던 것 같지만 K가 들어오고 나서야 그걸 깨닫고서 마지막에 아주머님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의아하다. 그 전엔 자기랑 자연스럽게 결혼할거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덜 주거나, 여유있게 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K라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심지어 본인이 데려와 놓고는!)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선생님이 K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은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오히려 K도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를 끝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결말일 수 있는데, 큰 죄책감이 이를 압도하여 일생을 한량처럼 살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수록 선생님에게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덜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당혹감,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조해질법하다. 하트시그널처럼 모르는 지원자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측은하게 여기던 사람이 하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호감을 차지했으니. 고통의 정도가 차이날 뿐, 그 종류는 20세기나 21세기나 같았으리라.
그래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이게 20세기의 사랑인구나 싶다가도, 종착역에선 아 21세기에도 사랑이란게 그렇던데 뭘. 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다. 다소 딱딱한 표지 속에 들어있는 말랑말랑한 내용인 소설이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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