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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내용 속 소소한 추리,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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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자 X의 헌신을 초등학교 때 접한 이후로, 참으로 오래 알아온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워낙에 스릴러물을 좋아하다보니 추리소설 또한 좋아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내 흥미를 계속해서 자극해준 작가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못지 않게 꾸준한 페이스로 롱런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꾸준히 추리소설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

  서른 살을 마주하고 있는 시점에,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외부자극에 견디는 것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이다. 맵고 짜고 단것, 술, 격한 운동 등 큰 자극이 한 번 몸을 휩쓸고 가면 이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속이 쓰리고, 근육통이 좀 더 오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덜 자극적인 것을 찾으려 하거나, 한 번에 무리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이건 비단 먹는 것,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보고 듣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전엔 밥먹으면서 공포영화 스릴러 영화를 전혀 거리낌 없이 보던 내가 이젠 밥 먹다가 부대껴서 못보게 되었다. 이럴 수가.

  그래서 그런지 스릴러 드라마, 영화도 어지간한 마음을 먹고 보지 않는 이상 (영화관에 가서 보는 정도?), 일하고 돌아와서는 볼 체력이 남지 않아서 볼 엄두가 안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만 주구장창 찾아서 한 동안 봤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스케일 크고 막 온갖 설정이 설정 속에서 뒤엉켜서 몰입감이 엄청난 소설이 있어도 썩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읽었던 그의 소설 중 나미야잡화점의 기억은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 꼭 사람이 죽고 갈등과 원한이 쌓이고 해야 잘 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소소하게 흘러가서 막 자극적이지 않은데, 군데 군데 들어가있는 추리 요소가 잘 섞여서 그의 소설 치고는 꽤나 두꺼운 분량이었음에도 술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녹나무의 파수꾼도 딱 그런 소설이다. 추리의 트릭을 이런식으로 쓸 수 있구나. 라고 적어놓은 역자의 말처럼 이 소설도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읽기 시작하면 수십쪽, 수백쪽 읽어가면서 금세 다 읽게 된 소설이기도 하다. 마치 녹나무라는 컴퓨터에 저장해둔 어떤 사람의 염원을 홍채인식, 지문인식으로 생체인식을 설정하듯, 재생시켜서 과거의 기억을 다시 받아낸다는 녹나무의 신기한 능력이 가장 중요하게 제시된다. 이 설정이 이과감성 충만한 나에겐 '음 이게 되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읽기 시작하면 꽤나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큰 설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덧붙여지는 파수꾼의 소소한 추리 등은 잔잔하면서도 읽는사람이 계속 궁금해 하게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추리소설 작가이니만큼 살짝 살짝 힌트를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데, 다 읽고 나면 잔잔한 느낌이다. 잔잔한 재미라는게 이런건가 싶은 느낌도 든다.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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