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그녀의 다른 소설 7년의 밤을 읽은 기억은 확실히 났다. <28>을 읽으면서 처음엔 아마 얼핏 오래전에 읽어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링고, 스타 등의 이름이 익숙했다. 근데도 내용이 한 번도 읽지 않은듯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다시 읽게 되는 시간의 간격 속에서 몽실이라는 귀여운 강아지가 우리 가족의 한켠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처절하게 나타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학살, 그에 저항하는 링고, 스타 등 다른 개들의 저항은 지난 번에 얼핏 읽었을지 모르던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내 감정선을 자극해왔다.
개와 사람이 공통으로 발병하는 원인모를 전염병이 발생한 화양시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을 그려낸 28일간의 기록이 소설 <28>의 주요 내용이다. 알래스카에서 쉬차를 몰고 썰매견 경주를 하다가 낙오한 뒤, 자신이 사랑하는 개들을 늑대밥으로 던져놓은 트라우마에 한국에 들어와서 수의사가 되어 버림받은 개들을 보살피는 재형의 삶에, 전염병이 들이닥치게 되고 쿠키가 전염병에 결국 먼저 숨을 거둔다.
한편, 무법도시를 활보하는 개들에 의해 아내와 딸이 살해당한 소방대원 기준의 입장에서 개들은 죽여야할 대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스타의 목에 손도끼를 꽂아넣고 링고에게도 심각한 부상을 입혔으리라. 그에게 더이상 개는 반려견의 이미지가 아닌 흉폭한 학살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노에 가득찬 기준에 맞서 자신이 사랑한 스타를 죽였다는 이유로 그를 뒤쫓는 링고는 마지막에 자신을 그토록 아끼고 치료해주었던 재형의 목덜미를 물어버린채 함께 죽고만다.
결국 작가의 말마따나 "세상에서 가장 배신을 잘하는 '희망'"은 모두 사라진 결말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뒤로 인간에게 다시 개들이 '반려견'으로서 돌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는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서로를 추스르는 부분만 언급될 뿐이다. 400여 페이지를 넘겨가며 기대했던 밝은 결말은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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