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난 어지간하면 받아주다가 선을 넘으면 평생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면 화도 내지 않고 관계를 조용히 끝낸다. 이렇게 별 노력없이 끊는 것은 사람은 바꿔쓰는 것이 아니라는 강한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봤으면 해서 끊지 못하는 경우엔 부득이하게 화를 내서 내 불쾌함, 불편함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개인적으론 화도 잘, 똑똑하게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평소에 이성적으로 뇌 깊숙한 곳까지 거쳐서 정제시키던 말이 화가 나면 흥분해서 척수반사 일으키듯이 뇌를 안거치고 입에서 아무소리만 하다보면 덩달아 나까지 말실수를 해버려서 쌍방 과실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화난건 알겠는데 말이 좀 심하다?' 라고 반박당할 껀수를 잡히면 안된다.
화를 내는 입장에서 가장 상대를 미안하게 만드는 방법은 1) 절제된 화법과 언어 사용으로 상대가 넘으면 안되는 내 심리적 저지선을 넘은 것에 대한 지적, 2)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불편한 감정, 3) 다음엔 안그랬으면 좋겠다는 여유있는 당부의 말까지 함께 되었을 때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가 되어서 아무말 대잔치를 한바탕 벌이고 나면 너도 상처 나도 상처는 똑같은데, 상대가 나한테 반감을 가지면서 덜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 과정이 전혀 쉬운 건 아니다. 이를 위해선 선을 넘는 순간에 바로 내뱉을 수가 없다. 심사숙고 해야하고, 내 흥분을 한 번 억눌러야한다. 그 시간이 때에 따라서 바로 몇 분뒤가 될수도 있지만, 다음날 혹은 다음 주가 될 수도 있다. 그 때까지 오롯이 내 몫의 분노를 상대는 모른다는 것이 '뭐야 결국엔 내가 손해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를 화나게 만든 상대와 똑같은 상대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일단 참는게 이기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결국에 나는 이 사건에 완전히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고 잠시 멘탈 관리를 좀 해둘 필요가 있다.
서로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 감정 노동하기 싫어서 끊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에 화를 내면 처음엔 그래 잘 화냈다 싶지만 그 뒤에 따라올 얼마 동안의 어색함과 조심하는 기색은 여전히, 앞으로도 적응이 안될 것만 같은 불편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화를 안내고 넘어가면 호구처럼 보고 계속 선을 넘을까봐 정도껏 컷을 해주는 시점이 필요한 법이다. 이게 싫어서 나도 원만하게 서로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을 부단히 하는데, 상대 쪽에서 먼저 넘어오면 내가 그동안 했던 노력에 회의감이 들 때가 무척 많다.
상대가 내 감정의 선을 넘는 건, 가장 단순한 이유로는 진짜 장난으로 생각해서 별 뜻없었는데 내가 민감하게 받은 경우가 있었고, 나의 분노포인트를 캐치하지 못한채로 건드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본인이 뭔가 나의 행동에 의해 기분이 나빠서 그대로 급발진 하는 경우 등 너무도 변수가 많다. 조용히 살려면 인간관계부터 끊는게 최선인가 싶을 정도다.
가족들, 여자친구, 오랜시간 알고 지낸 지인들 등 시간이 지날수록 참 다양한 이유로 갈등이 생기고 이를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하는 과정이 연속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하나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이정도는 감수해야 또 다시 즐겁게 만나고 할 수 있을텐데 유독 요 몇주간은 힘든 과정이 꾸준히 하나씩 터지니까 멘탈관리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인간관계는 다른 인간관계로 풀긴 해야해서 내가 겪은 스트레스를 문제가 없는 다른 그룹에 털어놓고 하소연도 해보고 하면서 내 행동에 잘못이 없다, 혹은 내가 생각못한 잘못이 있었다. 하는 피드백을 들으며 다시금 공허해졌던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다시 마음 속 저편으로 밀어두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언제 서로 기분이 상했냐는 듯이 만나서 즐거운 대화를,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내가, 아니면 누군가 기분이 상해서 터놓으면 또 거리를 좀 두다가 스리슬쩍 가까워지는 밀고 당기기의 연속. 이게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 이런 것들 내가 앞으로도 잘 견딜테니, 대신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하나 다 해결하고 다시 즐겁게 지낼 때 하나쯤, 또 이걸 잊을만 할 때 다시 한 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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