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장거리 연애, 국제롱디 하면서 되새겼던 글귀들

728x90

어딘가에서 보고서 메모장에 담아뒀던 롱디 관련 글들인데, 나처럼 롱디를 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한다.


1.
장거리 연애 - 내가 성장하는 시간

현재 남자친구와 7년 동안 국제 장거리 연애를 하였다. 처음에 홍콩-광저우(약 4시간 거리)로 시작해서 한국-영국, 한국-중국, 한국-영국, 한국-세계 여행(9개월), 다시 한국-중국이라는 멀고 먼 장거리 연애를 하였다. 그나마 한국-중국이면 시차도 1시간밖에 안 나고 비행기 시간도 비교적 짧지만, 한국-영국일 때는 시차도 커서 얘기할 시간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때는 남친이 9개월 동안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했을 때로 연락이 아예 안 되는 날도 있어서 어떨 때는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안전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지만, 지난 7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배운 나의 장거리 연애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여행을 즐겨라
장거리 연애 중인 두 사람이 만나려면 누군가는 여행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가거나, 상대방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거나, 둘 다 제3 지역으로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대학생 시절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날 수 있었는데, 학생 신분을 이용해서 방학 때면 같이 여행을 다녔다. 우리가 주로 여행했던 곳은 중국이었는데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갈 곳도 많고 물가도 싼 편이라 적합한 곳이었다. 직장을 다녔을 때는 학생 때처럼 길게 만나지는 못했지만, 연휴를 이용하거나 휴가를 한꺼번에 써서 만났다. 보통 만남을 준비하려면 2~3개월이 필요한데, 일단 우리가 언제 만날지 알게 되면 남은 2~3개월은 힘들어도 버틸 힘이 생긴다. 롱디 커플은 일상의 소소한 추억을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여행을 통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2. 정기적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라
우리 커플이 장거리 연애를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전화 통화는커녕 문자도 보내기 쉽지 않아 시간을 정해놓고 MSN으로 채팅을 할 정도였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상용화돼서 원거리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생활을 공유할 수 있다. 우리는 기념일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영상통화를 하며 같이 식사를 했다. 당시 한국-영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저녁을 남친은 점심을 먹었다. 어떤 커플은 영상통화를 켜놓고 동시에 같은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겼다고 한다. 둘이 같이할 수 있는 게임을 하거나, 흥미로운 기사나 책을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적인 데이트 방법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3. 주변에 오픈하기

사실 이 부분은 다소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오픈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연애 초창기에 어쩌다 보니 양가 부모님께 알리게 되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몇 달 안 돼 남친 부모님을 만나서 중국 여행을 같이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당시 내가 학생이라며 여행 경비도 지원해주셨다. 다음 해 우린 한국에 가면서 내 가족들에게 오픈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가 가상하다. ㅋㅋ 그래도 양가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인정해주셨고 덕분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방학 때마다 몇 주씩 여행을 가도 이해해주셨고, 때로는 여행 경비하라고 용돈도 주시기도 했다. 심지어 엄마는 남친 만나러 언제 가느냐고 먼저 물어보실 정도로 오픈마인드였고, 남친의 할아버지와 아버님께서는 연말에 놀러 오라며 비행기 티켓을 사주시기도 했다.

직장의 경우 처음엔 굳이 알리지 않았는데, 근무지를 바꾸면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알려줬다. 물론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에서는 좋은 분들을 만나 운이 좋았다. 남친이 한국에 오면 식사 초대도 해주시고, 남친을 만나기 위해 긴 휴가를 쓰는 것도 이해해주셨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오픈했기 때문에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4. 언제가 끝인 줄 알면 버티기가 수월해진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언제 만날지 알게 되면 버틸 힘이 생긴다. 다음에 언제 만날지에 대한 단기적인 계획과 언제 장거리를 끝내고 같은 지역에서 지낼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하면 좋다. 내가 많이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우리 언제쯤 이별하지 않고 한 곳에서 지낼 수 있을까?"였다. 6년 동안 한결같이 대답이 "모르겠어"여서 마음이 무척 답답했지만, 때가 되니 장거리 연애를 끝내는 날이 찾아왔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알게 되니 마지막 장거리 연애 1년은 마음이 훨씬 가볍고 즐거웠다. 물론 상황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진지한 사이가 되면 대략적으로라도 롱디를 끝낼 시점을 논의해 보는 것도 좋다. 다만 상대방이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거나 부담을 느낀다면 내가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줄지도 알아야 한다.


5.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자. 우리가 썼던 방법을 예로 들자면, 남친의 경우 여행 가서 엽서 보내기, 자장가 불러주기(잠이 더 깼지만 ㅋ), 남친이 홍콩에 있을 때 홍콩 여행가는 내 친구에게 부탁해 내가 먹고 싶어 했던 과자 선물하기, 나 몰래 같은 비행기 옆자리 예약하기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내가 쓴 방법은 시차를 이용해 모닝콜 해주기, 편지 보내기, 소포 보내기, 남친 자전거 여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홍콩에 서프라이즈로 가기 등이 있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소소하게라도 전달한다면 롱디커플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표현인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해주는 것을 잊지 말자.


6. 나의 삶을 살자

연인이 생기고 나면, 특히 어릴수록 주변 사람들이나 학업에 소홀해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지만, 극단적일 경우 ‘내 삶’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들은 연애하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의 시간을 맘껏 보내다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면 그 시간은 오직 둘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다.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못 만나는 것보다, 아예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못 만나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못 만나는 상황이니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나의 경우 독서, 운동, 자격증 따기, 강연 듣기, 외국어 공부 등을 하며 자기계발 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내 삶을 온전히 즐기게 되면 연인에게 덜 의존하게 된다.


7. 관계를 발전시키는 의사소통하기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의사소통이 중요하겠지만 장거리 연애를 하는 연인들에게 의사소통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만나서 얘기하면 금방 풀릴 일도, 전화나 문자로 하면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가 나거나 기분이 상해있다면 우선 나의 감정을 먼저 정리한 다음 상대방에게 내 감정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이 좋다.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가 쉽기 때문에 감정이 다소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자. 감정 조절이 정 어려울 때는 직접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좋다. I-message를 사용하여 주어를 ‘너’가 아닌 ‘나’를 써서 표현한다면 대화가 좀 더 부드럽게 이어진다. ‘너 때문에’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상황이어서 내 감정이 어떠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추천한다. 속상한 마음이 들 때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둘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말싸움, 기 싸움이 아닌 대화로 그때그때 풀자.


8.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을 곁에 둬라
연애를 하다 보면 고민이 많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장거리 연애의 경우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기 때문에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이때, 나와 상황이 비슷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이의 공감과 조언을 받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경험에 따라 조언해준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고유하듯, 모든 커플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나의 연애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상처가 있거나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 주는 조언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주는 조언은 확실히 다르다. 어떤 조언을 받아들이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아는 사람, 연인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행복만큼 상대방의 행복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나에게 충고나 강요를 하려는 사람보다는 내 감정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좋다.


9. 자신을 사랑해라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외로운 마음에 남친에게 투정 부릴 때가 많았다. 남친에게 연락이 안 오거나 남친 삶에서 내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남친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와 난 행복하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이건 내 행복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나는 남친에게 의존하며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고, 나의 행복 또한 그의 말과 행동에 달렸었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인데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으로 넘쳐날 때 우린 진정으로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애착’이 아닌 ‘사랑’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어떤 감정이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게 사랑이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상대방의 사랑을 구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그럼 연인 관계도 훨씬 건강해진다.


10.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
롱디를 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상상과 걱정을 많이 한다. 나한테 마음이 식으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인이 롱디하다가 세드엔딩이 된 이야기를 들으면 내 얘기가 될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롱디하다가 해피엔딩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좋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람의 마음은 당사자의 것이지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그런 내 모습 때문에 떠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상대방의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의 것임을 인정하자. 나는 오직 내 마음만 책임지면 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롱디는 힘들다. 정말 너무 힘들다. 그래서 롱디해서 결실을 보는 커플이 많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롱디가 아닌 커플도 헤어지는 것을 무수히 많이 봐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거리보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느냐이다. 일단 롱디를 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외롭고 우울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런 감정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남친과 7년 동안 롱디를 하면서 나는 종종 ‘몸에서 사리 나오겠다’라는 말도 들었었다. 나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이 찾아오곤 했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다. 고통스럽지 않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남친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어야, 다른 누군가와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다. 롱디는 정말 쉽지 않다. 나도 도 닦는 마음으로 7년을 보냈고, 다시 하라고 하면 결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 동안 내가 많이 성장해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해서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하면 좋다.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삶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연인과의 만남을 새로운 경험과 도전으로 채워보자. 만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 함께 있는 그 순간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일부를 발췌하며 마무리하겠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롱디 커플의 만남은 이별이기도 하다. 만남 후 이별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곧 다시 만날 설렘으로 그 마음을 채워보자. 그리고 기억하자, 언젠가 롱디는 끝난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롱디 커플을 응원한다.


책 추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by 존 그레이
사랑에 대한 네 가지 질문 by 바이런 케이티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스님, 저는 제 애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안 웃거나 차갑게 대하면 마음이 와르르하고 무너집니다, 자꾸 사랑이 의심되는데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람이 어찌 항상 한결 같을 수 있겠습니까? 흐르는 강물도 빗물과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데 사람 마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예, 저도 잘 알고있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것은 본디 간사하고 간사해서 오늘 사랑을 속삭였어도 내일 차가운 말들로 저를 죽이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그것을 알면서도 기대를 하고 사랑에 빠지는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의 성질을 아시니 반은 깨우치셨습니다. 마음을 어찌 하고 싶으십니까?"

"모르겠습니다. 그와 함께 있을때는 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과도 같던 것이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바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바다로 변하는 것이 너무 괴롭습니다. 아예 마음이라는 놈이 죽어버려서 제가 그 무엇도 못 느꼈으면 하는 날들도 있습니다. 어째서 이 마음이라는 놈은 분명 제 안에 있는 것인데 이리도 타인에 의해 흔들립니까? 가장 제 것이고 온전히 제 것이여야 하는데 이게 정녕 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내 것이기에 가장 다스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법우님은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실 수 있습니까? 나는 이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법우님의 마음도 좁은 우리 안에 집어 넣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양한 색을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스님, 제가 이 사소함들에 무뎌지는 날이 올까요? 제 애인은 저를 달콤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그의 입맞춤 하나에 저는 우주 끝까지 갔다가도 그의 차가운 눈빛 하나에 저기 진흙탕 가장 더러운 곳에 쳐박히기도 합니다. 이 날카로운 사소함들에 무뎌지지 않아서 너무 괴롭습니다. 사랑을 아무리 많이 해도 무뎌지기는 커녕 생살이 찢기다 못해 그 안의 뼈가 드러나는 기분입니다."

"무뎌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무뎌지진다면 그 무엇도 느끼지 못해 도리어 괴로우실 겁니다. 찢어 발겨진 생살도, 드러난 하얀 뼈도 보듬어 아물게 사람이 올 것 입니다"

"아니 그럼 스님, 그 사람 도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제가 지금까지 몇명의 연인들을 떠나보냈는지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공자에 의하면 군자는 때를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

"정말 너무하십니다. 결국 다 부처님 뜻이라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스님, 이건 어찌합니까? 저는 애인의 마음을 자꾸 확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러한 제 행동 때문에 그가 지쳐 떠나갈까봐 두렵습니다. 두 가지 마음들이 충돌하여 미칠것 같습니다"

"아까 직접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말입니다.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것입니다. 당장 원하는 답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영원을 약속하는 증표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들 합니다. 왔으니 사랑하고 떠나니 슬퍼합니다. 인연이면 남을 것이고 아니면 떠날 것입니다. 어째서 아직 떠나지 않은 이가 떠날까봐 두려워하십니까?"

"제가 마음을 너무 빨리 많이 주기에 또 상처 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어째 이리도 어렵고 구하기 힘든 것입니까, 매일 밤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영원이었습니다. 어째서 사랑은 이리도 어렵습니까"

"어렵기 때문에 무뎌지지 않는 것입니다, 법우님께서는 그토록 바라시는 영원을 얻기 위해 사람 숲을 이리도 헤매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람이 있다면 아픈 법입니다. 영원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한 무뎌지기는 커녕 더더욱 갈구하며 사소함들에 날카롭게 베이실겁니다"

"저는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이 떼를 쓰고 있습니다. 사랑과 영원을 포기하는 것도 싫지만 아픈 것도 싫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의 관계입니다. 다만 그 여정에서 너무 다치진 않으시길, 그리고 그 길이 끝에 꼭 바라는 것이 있으시길 바랄뿐입니다.

너무 지치실때는 하늘의 달을 보시길 바랍니다. 저 친구도 스스로 채워가고 비워가며 세상 모든 것들을 은은히 비추지 않습니까? 법우님이 영원과 조우하기 전에 만나는 모든 인연들도 법우님의 빛을 받았을 것입니다.

달과 같은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달은 스스로 채우고 비워가며 만물을 사랑합니다. 우리네들은 달의 표면에 있는 상처들도 아름답다고 하며 달을 사랑하죠.

중국의 시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믐달에 별 세개. 그 모양을 보면 마음 心자와도 같습니다. 법우님은 자신의 마음이 다정하다고 해서 너무 미워하시진 말길 바랍니다.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든다고들 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것도 또 없습니다.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을 거창하게 말했을뿐이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달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달을 끌어안고 놓치 않을 귀인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은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는
수행자의 걸림없는 삶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