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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사귄지 7개월만에 미국으로ㅠㅠ, 1년 간 한국 미국 롱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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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2019년) 미국 미네소타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박사를 진학할 지 말지 결정하려고, 한국에서 바빴던 석사생활을 정리하고 환경이 좋다는 미국 연구실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으로 다녀오게 된 것인데, 가장 큰 걱정은 여자친구였다. 당시 만난지 1년도 안된 상태에서 미국으로 넘어와야 했으니 처음엔 말하기도 미안했고 말하고 난 뒤엔 오래 못 본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도 많이 아쉬웠다. 인터넷에 종일 롱디 검색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도 난다.

 

한국의 지도교수님 께서 9월즈음 권유하셔서 고민을 하다가 10월즈음 여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다녀오면 이런이런 장점이 있을 것 같고, 사실 바로 취직해도 상관은 없는데 좋은 기회 같아서 네가 괜찮으면 다녀와보고 싶다. 고 했더니 여자친구는 전혀 표정의 변화없이, '오 되게 좋은 기회다, 나 신경쓰지말고 잘 다녀와' 라고 쿨하게 보내주었다. 지금생각해도 상당히 놀라운 대답이었고, 전혀 아쉬운 티가 없어서 되게 놀랐었다.

 

그렇게 출국 날짜까지 잡히고 막판에 데이트를 몰아 하면서 아쉬운 이별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니, 지난 1년간 마음고생을 내가 많이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석사생활이 힘들었을 지언정, 가족, 여자친구, 다른 친구들 등등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지낼 수 있었는데, 미국에선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서 지내는 느낌이 정말 차이가 컸다. 학부때의 교환학생이라면 같이 간 학교 친구들이 있어서 훨씬 덜 외롭게 지냈겠지만 난 연구실로 들어온 것이라 매우 달랐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세팅하는 것이 한 1,2주 정도 걸린 것 같고(은행, 통신, 음식장만 등) 이 와중에 실험실 생활을 또 적응하려고 한달 쯤 걸리고 시차에 영어에 뭐에 하면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 것 같다. 거의 한 두달을 이런 잔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살다가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쯤 느껴지는 그 공허함이 생각보다 컸다. 악기도 못하고, 마땅한 취미생활이라고는 주말에 농구하거나 평일에 헬스장 가는 정도, 좋아하던 악기도 켤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공부를 하기에도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던 시점이었다.

 

이 와중에 여자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고, 내 생각에 알게모르게 이 시간에 의존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은 조금 더 조급해졌던 것 같고, 이게 지나치게 되어서 여자친구에게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게 그 자체로도 많이 노력을 했다. 그리고 내가 많이 바빠지려 노력을 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내 몸을 녹초로 만든 후 잠자리에 들어야 잠도 푹자고, 또 집에 와서 잡스런 걱정들을 안하기 때문이었다. 술도 혼자서는 절대 안먹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혼술의 매력또한 경험해본바 마실 당시에는 너무도 즐겁지만, 여기서 누적되는 피로감과 그 피로감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우울함은 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험 준비에 자기소개서 등 할 일이 많았기에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 해먹고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 풀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술값도 아껴서 좋고 말이다.

 

사실 한국에선 전화는 만나기 직전에 어딨는지 찾을 때 이외에는 카톡하다가 직접 만나서 카페가서 몇시간 씩 수다를 떨면서 풀던 우리였기에, 장시간 전화통화는 어느 누구에게도 익숙치 않았다. 나는 업무용 전화로 짧고 빠르게 끊는 전화는 많이 했지만 수다떨기 위한 전화는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어서 나중에는 전화는 하고 있는데 딱히 할 말이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4월부터 박사준비를 시작하면서는 일상이 집-도서관-연구실만 반복하는지라 특별하게 내쪽에서 더 이야기 나올 것이 많이 없었던 것도 크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전화기 잡고 있을 바에 공부에 더 집중하기로 하고 카톡 위주로 많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서로 뭐하냐고 묻기 전에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주 이야기 했다. 서로가 있는 곳의 날씨는 어떻고, 오늘은 어떤 맛있는 것을 먹었고, 날씨가 어땠고 등등..시차를 극복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대화가 우리에게는 나았던 것 같다. 매번 서로가 겹치는 시간을 기다리며 전화랑 연락을 기다리기 보다는 카톡 남겨두고 답장 천천히 하는 식으로 우리의 시계는 천천히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매일 하던 연락 텀에서 시간의 경계가 애매해지게 연락을 주고받으니 오히려 시간이 빨리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크게 연락이 많이 힘들지 않았고 무사히 1년을 보내서 재회할 수 있었다.

 

롱디를 이렇게 무사히 마치며 다시 만나게 된 후에 느낀 점은, 서로 이런 얘기가 미리 잘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에 놓이게 되면서 이런저런 차이들을 더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 때 이걸 상대에 대한 불만으로 돌리느냐 아니면 서로의 차이로 인정하고 묵묵히 지나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가장 나와 여자친구의 차이는 여자친구가 나보다 카톡을 더 좋아하고, 전화는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서로 지내온 환경이 다르다보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모두가 전화를 좋아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한 번은 혼자 너무 심각해져서 구글링을 하면서 연락문제를 검색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연락을 막 엄청나게 많이 하지는 않는 커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우물안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이런 차이를 인지하게 된 덕분에 연락문제로 크게 다툰 적 없었고, 또 보고 싶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거리들 몰아두었다가 전화통화, 영상통화 하면서 한시간씩 통화하기도 했으니 그 때 다시 충전해서 또 일주일을,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꼭 많은 이야기가 서로 진행되어 있어야 하고, 설령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이야기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내가 서운하게 느끼는 행동이 나만 서운하다고 느끼는지, 나만이 가지고 있던 기준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다시 만난 날, 우린 만나자마자 소리지르며 반가워서 부둥켜 안고 방방 뛰었다. 그리고 밥 먹고, 커피도 먹으면서 일상적인 데이트 분위기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내가 미국을 1년간 다녀온 것이 마치 꿈인 것만 같게 느껴졌고, 익숙한 분위기와 익숙한 우리의 모습에 우리 둘다 즐거웠다.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아서 좋았고, 영상통화로만 보다가 직접 눈앞에 마주대해서 보게되어 정말 기뻤다. 

올해 하반기, 나는 다시 미국으로 출국을 해야겠지만 이제는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미국을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더 빠르게 적응하고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연인간의 관계라는 것이 커플바이 커플이라서 내가 경험했던 것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처한 환경이 달라서 무조건적인 참고가 되지는 않겠지만, 나의 경험이 아 이렇게 롱디를 해서 잘 지내는 커플도 있구나 라고 참고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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