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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박사과정 준비하기

미국박사과정 어플리케이션을 마무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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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책상 앞에 붙여뒀던 일정표랑 기타 메모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전효진 변호사의 공부 글귀들.

 

여기 시간으로 12월 2일자로 모든 박사과정 지원절차를 마무리했다. 총 열 세개의 학교에 지원했고, 마무리 했다는 건 내가 낼 수 있는 서류와 추천서와 결제까지 마쳤다는 뜻. 아직 학교측에서 확인되지 않은(not verified) 성적표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학교에는 도착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조만간 처리 될 것이기에 별로 걱정이 없다. 몇몇 학교들은 데드라인이 더 긴 곳도 있지만, 어차피 자소서 내용이 크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며 시험을 다시 볼 것도 아니었기에 다 싸그리 넣어버렸다.

 

 

돌아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1년이었다. 처음 미네소타로 올 때만 해도 아 열심히 연구하다가 해보고 내년에 박사할지말지 결정해야지 생각 했던 것이 1월 말이었다. 랩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박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니 굳이 뭣하러 1년을 허비하냐 그냥 올해에 준비해라 실험실 일정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고 코스웍도 듣는 것 없으니 될거다. 온갖 격려를 받고서 토플을 시작한 것이 4월이었다. 그리고 7월에 토플시험, 이후엔 곧바로 GRE준비해서 본 9월 시험은 결과가 처참했고, 10월 CHEM GRE도 예정되어있던 터에 막판 스퍼트로 올렸던 GRE 재시험 결과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입학 평균 미니멈을 찍으면서 구사일생하고 겨우겨우 어플리케이션까지 마친 것이다.

 

 

다행히 자소서나 이런 것들은 시간이 조급하게 마무리 하지 않고 충분히 많이 검토했다고 생각한다. 걱정거리 중에 하나였던 교수님 추천서도 정말로 별 탈 없이 마무리 되어서 기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이라고 쓰고 합격 발표가 나면 이라고 읽는) 썼던 자소서들도 공유해보고자 한다. 지금 마음은 지원한 열 세개 대학중에 한 군데도 붙지 못하고 떨어져도 후회는 없을것이고 자신있게 한국에서 취준을 할 생각이다. 정말로 실험과 시험과 자소서를 써내기까지 온갖 인고의 시간들을 1년간 경험했다고 생각하며, 매일 5시면 퇴근하던 연구실 친구들을 뒤로하고 오피스에 남아서 11시까지 책이랑 노트북 붙잡고 씨름하던 내 스스로가 너무도 짠할 정도로(그 때는 급해서 짠한줄도 모르고 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다 떨어져도 그냥 이게 내 한계겠거니 하고 쿨하게 그만둘 자신이 생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올 한해는 나 스스로 잘 지낸 것이라고 칭찬해줄 수 있겠다. 

 

 

한참 힘들었을 시기에는 '내가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온다면 절대 2019년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런 생각은 고3때 자습실 문을 아침저녁으로 직접 열고 닫으며 생각했던 것과 너무도 같은데, 그 시간 갭이 한번 더 생긴 느낌이다. 마치 컴퓨터의 시스템 복원 날짜를 지정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생각이 들고나면 결과가 안좋아도 후회가 없더라. 그래서 고3때 재수를 안했기도 했고. 물론 부모님께 지원받은 반년간의 생활비 등은 (초반 반년은 내 돈으로 해결했으니) 너무도 죄송할테지만 앞으로 벌 돈이 더 많을테니 차차 갚아는 걸로 생각하고 싶다. 

 

 

실험하랴, 공부하랴 하면서 놓쳤을 수 많은 기회비용들도 많겠지만, 합격한다면 뭐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조차 안들 것 같고, 중간 중간에 즐거운 기억들도 많이 있었으니 챙길건 다 챙겼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 학회도 다녀왔고, 동기들도 만나고 왔고 그 외에 건강관리도 잘 했고 기타 등등 좋았다. 너무도 추운 날씨를 가진 곳에서 보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충분히 따뜻했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화학 지식에서부터 실험 테크닉, 막판엔 자소서 첨삭까지 받으며 차라리 여기서 준비하는게 나았을 거란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준비했으면 GRE 점수가 더 높았을지는 모르나 너무도 유혹거리가 많고 영어도 잘 안늘었을 것이니 말이다. 내 옆자리 중국인 친구는 학부 때 유학 준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고 했는데 정말 대단하기 그지없다. 난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쩔쩔맸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준비하면서 미국 박사과정에 입학한 모든 사람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으며, 이 같은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그 박사 과정을 '시작' 할 수 있는건가 싶었다. 여러모로 외로운 과정이었지만, 옆에서 도와준 친구들이랑 한국에서 계속 연락하고 지낸 가족, 여자친구, 지인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제는 남은기간 무사히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한 1월 정도는 혹은 2월까지는 방구석에서 놀고먹고자고 하면서 번아웃 된 나 스스로를 좀 돌봐야겠다. 두고 온 바이올린도 다시 하고 오케도 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먹고싶었던 한국 음식들도 먹고. 틈틈이 써두었던 버킷리스트를 다시 돌아봐야겠다.

 

 

붙고나면 또 다른 5년 계약직으로의 시작이겠지만, 그 때 부터는 진짜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시간이 될테니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예상치못한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행복회로를 풀파워로 돌리면서 남은 12월을 마무리해야겠다. 혹시나 궁금한 사항 있으신 분은 댓글, 방명록 남겨주시면 따로 포스팅 하거나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암튼! 이제 나도 5시에 퇴근하고 집에 가야지

아,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 유학 재수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진 않다. 개인적으로는 학석사를 SKP를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네임벨류에 밀려서 못들어가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합격해서 미국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석사과정에서 쌓은 연구 경험덕분인 것 같다. 자기가 어떤 분야를 좋아하고 어떤 쪽으로 연구를 해보고 싶은지 등을 자소서에 녹여내려면 직접적인 실험실 경험, 프로젝트 경험이 있지 않은이상 좋은 자소서를 적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특히 학부에서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관련 경험을 미리 시간투자해서 잘 쌓아두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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