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학교는 ORP라고 해서 Orginal research proposal이라는 시험을 4년차에 쳐야한다 (한국은 없는듯하고 미국도 없는 대학이 많다). 내가 전혀 연구해본적 없는 분야에 대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연구 계획서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목적이다. 2년차에 literature seminar도 나와 연관 없는 분야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이건 그냥 이런이런 주제로 진행되는 연구가 있고, 현재 여기까지 이렇게 나왔다고 한다. 앞으로는 이런 부분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정도라고 한다면, 4년차 ORP는 그 이후를 내다보는 시야를 필요로 한다.
나는 내 박사과정 내내 nickel complex를 연구하고 있고 이번 ORP를 위해선 Vanadium complex를 주제로 정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개털리다, 찢기다 등을 'I'm grilled' 라고 표현하는데, 말그대로 발표에서 'grilled' 되어서 발표장을 빠져나왔다. 역시 경력이 오래된 교수님들이다보니 내 프로포절에 대해서 아주 날카로운 질문과 코멘트를 던지셨다. 무심코 넘겨버린 잔실수도 나왔고 (실제로 grant를 쓰게 된다면 절대 허용 안됨), 간과한 디테일도 있었지만 그보다 가장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큰그림, 연구주제를 바라보는 방향, 큰 그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패스하긴 했지만
지도교수님 말마따나 프로포절 주제가 너무 safe, comfort zone에서 놀고 있다는 코멘트가 이번 발표를 관통했다. 물론 내 박사과정 연구가 그런 작은 부분에 신경써서 진행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프로포절을 쓸 때는 훨씬 더 큰 그림을 봐야한다는 조언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맞는 얘기다. 내 연구주제는 돈 받는 그랜트에 그려진 큰 그림의 일부분을 수행중인 것이다.
내가 실제로 grant를 써서 기관에서 연구비를 받으려고 한다고 할 때, 이게 말이 되는지 돈을 받을 만 한지 등에 대한 평가를 한다고 하면 아마 오늘의 발표는 돈 받기는 글렀다고 보겠다. 그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야, 선구자가 되려는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했다고 본다. 교수님들도 아신다. Grant 쓰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 본인 스스로 느끼고 계실테니 말이다. 쓰면 쓸수록 나아진다고 하시긴 하지만 아마 몇번이나 더 걸려넘어지고 깨져본 다음에야 노하우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나중에 grant 쓸 일이 생기면 아마 오늘의 시간을 되새기면서 코멘트들을 곱씹고 더 나은 프로포절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어쨌든 이제 난 ABD (All but dissertation) state가 되어 내년 졸업을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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