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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4년 만에 미국에서 오케스트라 공연 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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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스무살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오케스트라에 들어간 이후로 미국 오기 전까지 10년을 이런 저런 무대에 오르면서 바이올린을 해왔다. 근데 미국에 오면서 프리림에 대한 압박감, 적응을 먼저하고 악기는 나중에 꺼내자 라는 마인드로 어찌어찌 바쁘게 살다보니 오케스트라를 4년이나 끊고 지냈다. 물론 그 사이에 악기도 미국으로 가져왔고, 중간중간 혼자 켜고 이리저리 또 찾아도 봤지만 영 녹록치가 않았다. 서울에 그렇게 많던 오케스트라가 여기는 이렇게나 없다니 기가찰 노릇이다. 아마 시카고 어디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동네는 아니다..그래도 어찌어찌 방법이 없는건 아니었는데 음대 교양수업의 일환으로 있는 오케스트라 수업을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UIUC에는 두 개의 비전공 학생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한 개는 풀편성, 다른 한 개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이다. 하지만 풀편성의 경우 월요일 오후 3시라는 학부생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시간대에 있어서 도저히 불가능 했다. 지도교수님이 찾지 않더라도 월요일 오후시간을 비우는 건 사실 대학원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스트링 오케스트라는 월요일 오후 7시에 있는 수업이었는데, 지난 3년간 내가 월요일 축구 모임을 나가느라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물론 처음 연구실 들어와서는 교수님 저녁 7시에 있을 오케교양수업좀 듣겠습니다 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축구를 계속 한 것도 있다. 다행히도(?) 이번에 같이 축구 하던 친구들이 각자 사정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나도 월요일 저녁 시간대를 확보할 수 있었고, 드디어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신청해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약 두 달 연습을 같이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그 합주의 즐거움이 너무 좋았다. 월요일 저녁 7-9시에 모이는 것이고, 프로그램도 생소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냥 나가서 같이 부대끼며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구나 하고 연주하는 내내 힘든줄을 몰랐다. 솔로이스트 오디션도 본다길래 기왕 하는거 다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솔로이스트 자리도 따내서 한 곡은 세컨바이올린 수석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한 합주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흥분된 상태로 집으로 가곤 했고, 이게 좀 가라앉으면서 피곤함이 몰려오는걸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케수업은 월요병을 극복하게 해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제 무대에까지 오르고보니 중간에 울컥울컥 한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잊고있던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좀 묻어나와서 그런게 아니었나싶다.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정성들여 준비한 느낌의 공연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의 영역에 있다보니 연주 퀄리티나 보잉체크 등이 좀 덜 다듬어진 느낌도 있고, 다이나믹이나 여러 디테일이 좀 어수선한 느낌도 있으나 예닐곱번의 연습으로 이정도 올렸으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어제 들은 객석의 환호성으로 말미암아 생각해보면 퀄리티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이라서 편한점은 합주와 공연만 신경쓰면 되고 공연장 대관, 악보준비, 무대 세팅 등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 학교 관계자분들이 해주셨고 우리는 앉아서 연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잡일을 하는 과정도 큰 과정의 하나이고 기억에 남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편하게 하는 공연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이 오케스트라 수업은 이렇게 큰 즐거움을 주는 공연을 한 학기에 두 번이나 올리기에 아직 한 번의 공연이 더 남아있다. 벌써부터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것이 기쁘고 나는 그냥 졸업할 때 까지 월요일 저녁은 이 수업에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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