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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미국생활이 안정권으로 접어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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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득 집에서 밤에 책을 읽다가 앞으로 내 생활의 주변 환경, 가령 직장이나 사는 곳이 바뀔지언정 생활의 패턴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다는 생각이 들었다. 9~7시 정도까지 일하다가 퇴근해서 여자친구와 (혹은 와이프와) 저녁먹고 다음날을, 혹은 주말을 맞이하는 일상이 수십년 간 지속될 것 같은 느낌. 이 안정감이 사뭇 기분이 좋았다. 집이 월세긴 하지만 뭐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고, 맞벌이로 벌면서 가끔씩 바람쐬러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내가 어릴 적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여러가지 이루고 싶었던 것들이 어느새 이루어진 느낌이다.

물론 디테일이 전부 이뤄진 건 아니다. 내 드림카는 여전히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SUV인 포르쉐 카이엔이고, 내 개인서재가 있었으면 좋겠고, 집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으면 좋겠고, 아파트대신 단독주택이었으면 좋겠긴 하지만 (아직도 네이버 메인에 뜨는 실내 인테리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워낙 조용하고, 공간도 둘이 살기에 넉넉하고, 귀여운 고양이까지 한 마리 있으니 이미 하나의 가정을 이뤄서 살고 있는 것이고,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이나 다른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뿐, 인생의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아마 아이가 생기면 그 때 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겠지만 가정이라는 큰 틀을 이뤘다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 앞의 명제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겠다. 큰 코어가 하나 생긴 기분이다. 

예전에는 도파민 중독자처럼 자극적인 일을 찾아 다니고, 그래서인지 오케도 참 열심히 한국에서 했던 것 같은데 시골로 와서 도파민 디톡스가 된건지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빠진건지 여러모로 그런 자극이 크게 막 뭔가 당기지 않는다. 아니면 이미 다 해본거라 크게 감흥을 못느끼는 걸수도...결론적으론 나쁘지 않다. 또 여기서 요리나 축구 같은 또 다른 흥미를 찾았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붙일 시간이 생겨서 기쁘다. 이게 아니었으면 또 주구장창 오케에 빠져서 살았을 것이다. 두 가지 전부 재밌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경험의 깊이만큼 경험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삶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전체가 오케스트라, 바이올린과 함께였으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또 다시 내가 파둔 깊고 넓은 오케스트라 방으로 들어가기에 어려움이 없겠다. 

이전에 차승원 배우가 나영석 pd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평안한 가정이 자신이 일하는 것에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본인이 가정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생각보다 나는 연구실 말고 집에신경 쓸 일이 생기면 (공과금, 수리할 것이 생긴 무언가 등) 연구실에서도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 신경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앞서 언급한 평안함이 가져오는 시너지는 일의 효율까지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사람들의 삶의 테크트리가 너무 비슷해서 누가 앞서고 누가 뒤쳐지는지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래서 나도 지난 시간을 경주마처럼 달려가곤 했는데, 여기서는 워낙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어서 비교가 무의미해지는 것을 계속해서 느낀다. 한 방향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어디 복잡한 교차로처럼 각자 가고싶은 방향으로 가느라 내가 다른 쪽에서 달리고 있는 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비교가 무의미해지면 각자의 삶은 더욱 특별해지고 빛이난다. 굳이 '어떤 나이대'에 '어떤 것'을 성취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도전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사회에 있게 되는 것이 정말로 좋은 사회 분위기 아닐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서 큰 사건사고 없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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