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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혜옥이',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ptsd를 선사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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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어그로를 좀 끌었지만 솔직한 느낌으로 ptsd오는 스릴러 영화가 맞다고 생각한다. 스릴러가 꼭 첩보요원이 나오고 반전을 이끌어야만 스릴러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된다. 


영화 혜옥이는 고대 경영을 졸업하고 행시를 준비하는 '라엘'의 인생이 어떻게 서서히 망가져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다른 나라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한국인이라면 수능, 토익, 토스, 공무원시험 등 여러가지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영화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언덕배기 원룸에서 학원 현강을 오가며 수험생활을 하는, 전국의 수 많은 수험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나는 고등학교 수능 이후로 이런 생활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대신 대학원이란 선택을..) 내가 문과였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저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영화 초반에 보여주지 않았던 이전 거주자의 방 바닥, 냉장고 등은 영화 막바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악마같이 여기 살았던 모든 사람이 합격해서 나갔다면서 또 다른 학생을 몰아넣는다. 물론 고시를 위해서 여러 해 쏟을 수 있겠으나, 이 스트레스가 사실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능공부를 하면서 수능이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고, 다음을 위해서 몇 달이 아니라 일 년을 다시 써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정도의 압박이 아니니까 아주 죽을맛이다. 

내가 재수를 결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재수 삼수한 지인들 보면서 결론적으로 두고 봤을 때 성공해서 원하는 대학을 갔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봤기에 정말 굳은 결심이 아니라면 안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나에게 일 년 뒤처진다는 것은 나락으로만 가는 것 같아서 내 멘탈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대학원 생활을 경험해보니,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결과를 차곡차곡 쌓아서 보여주는 방식이 나에게 훨씬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생활을 성실하게 관리할 자신은 있고 그럼에도 데드라인이 따로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로 다시 돌아오면, 1차를 두 번, 2차를 두 번 떨어지며 장수생이 되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라에서 이런 수험생들이 얼른 시험치고빠질 수 있게 뭔가 도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이 시험만 붙잡고 있게 하기에는 전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가진 잠재력을 너무 낭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떼어내는 포스트잇의 내용이다. '왜살지' 라고 빼곡히 적힌 그 포스트잇을 황급히 떼어내는 그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서 머리도 자르고 고군분투해서 잘 준비했던 시험이 개명하기 전 주민등록증 때문에 망하는 그 느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합격후 직장으로 출근해서 에너지를 얻고 재충전 했어야 했을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는 그 느낌은 예전 영화 '도가니' 를 봤을 때 만큼이나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전국의 수험생이 이 영화를 한 번씩 본다면 초시생에게는 더 강한 자극이 될 수도, 장수생에게는 끊고 나올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매몰비용과 매몰비용의 오류. 이를 위한 자기 객관화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 내내 강조하고 있다. 독립영화라서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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