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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넷플릭스 더 글로리 후기,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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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23년 최고의 화제작 중에 하나였던 더 글로리가 3월 10일 공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정주행 한 것 같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감명깊게 봐서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 더 글로리의 나머지 8개 에피소드는 먼저 공개되었던 8개의 에피소드에서 쌓아두었던 떡밥들을 회수하는 에피소드들이었다. 그 와중에 몇몇 예측하지 못했던 동은과 여정의 고난은 더더욱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마지막 사형수를 향한 열린 결말까지 모두 콕콕 찝어서 남김 없이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드라마였다. 학폭 가해자들의 찬란한 아름다움, 영광 (glory)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통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이런 문화 예술 창작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잊어버릴 때가 많다. 보통 타임킬링, 배우가 좋아서, 연기가 좋아서, 스토리가 재밌어서에 먼저 초점이 맞아서 그렇게 넘겨버리곤 하는 드라마들이 많은데 더 글로리는 주제 자체가 사회의 어두운 이면, 주변에서 한 번은 들었을 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복수극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접근했기에 더더욱 열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잘 만든 창작물 하나로 인해 사회에 심어주는 경각심이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고, 정치인들이 사회에 호소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준 드라마였다. 

아마 학폭을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극 중 동은이 아닌 경란의 포지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부분이 동은의 포지션이었다면 학폭이 이렇게까지 활개치지 못하지 않았을까) 내가 당하고 너도 당했지만 이를 떳떳하게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김은숙 작가는 마지막 경란에게까지 정의의 위스키 병을 쥐어주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함을 선사하게 만들었다. 

더 글로리가 공개된 이후 여러 유명인들이 학폭 관련 의혹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유명 유튜버였던 지기tv의 학폭 논란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충격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제보함에 따라 사회 전반적으로 학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 좋은 사회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본인이 학창시절 학폭에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12년간의 초, 중, 고 생활에서 한 번쯤은 비슷한 이슈를 봤을 것이기에 더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고, 함께 아파하며 학폭을 몰아내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흐름에 맞춰서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많은 학폭 가해자들이 사과하고 사죄하며 피해자들이 다시 용기내어 살 수 있는 사회적 흐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아마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학폭을 당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상처가 덧나는 아픔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정이 말했듯 상처를 치료 하려면 더 깊은 상처를 내서 새살이 돋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가 그들의 상처 위로 새 살이 돋게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가 없었으면 아무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세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시청자들에게 깊게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더 글로리가 ppl로 범벅된 드라마가 되어 동은이 서브웨이에서 알바를 하고, 맥심 믹스커피를 먹으며 잠을 깨고, 카페베네에서 주여정과 만나며, 주여정이 힘내라며 홍삼스틱을 건네거나 하는 장면은 몰입감도 깰 뿐더러 이만한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구독료가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재밌는 컨텐츠들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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