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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MBTI에 과몰입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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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새에 한국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유행이 된 게 MBTI (Myeers-Briggs Type Indicator)다. 개인적으로 유사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MBTI인데, 한국은 유독 과몰입해서 온갖 것에 갖다 붙이는 것 같다. 듣기로 최근 소개팅에서 가장 편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작이 MBTI라고 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환승연애2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전작들과 달랐던 점이기도 하더. 자기소개부터 MBTI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2020년 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2년 사이에 정말로 MBTI없으면 대화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심지어 최근 많은 컨텐츠가 MBTI를 다루고 있는데, 놀면뭐하니에서 MBTI특집으로 팀을 나눠서 게임을 하는가 하면 호텔 홍보에도 MBTI가 들어가는 기사를 보고 기함을 했다. 최근 기사에는 유명인들의 MBTI를 기사화 시켜서 나오는 지경이다. 아마 유튜브 컨텐츠도 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이게 이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혈액형이나 별자리도 이정도로 우리 삶에 파고든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앞선 두가지 미신들보다는 나름 분석적인 듯 해보이는 겉모습에 많이들 활용하는 것 같다. 더 믿음직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혈액형이나 별자리야 자기가 태어나자마자 결정되는 것이라 성격과 연관짓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반면 이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도출된 결과라서 믿을만 하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이걸로 빠르게 사람을 알아보고자 MBTI를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다.




재미로 보면되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라고 묻는다면 이런 과몰입에 대해서 우려스러운 점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나도 얼마든지 대화에 껴서 내 MBTI를 말하고 적당히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선 뭐 괜찮은 대화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혈액형, 별자리와 다른 점은 MBTI는 한도 끝도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도가 지나치다는 것. 그리고 네 가지 알파벳으로 상대를 성급히 재단한다는 것이다. 가령 대화를 하면서 아 혈액형이 A형이예요, 물병자리예요 하고서 여기서 막 뭐 성격이 어떻니 운세가 어떻니 하는 건 크게 오래가지 않는 반면 MBTI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여기서 가장 크게 우려스러운 점은 내 MBTI가 뭐가 됐든 과몰입해서 성격을 여기에 맞춰가는 것이다.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떠도는 MBTI 컨텐츠들이 정말 수도 없이 떠도는데, 이런걸 계속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성격이 여기에 매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다.


분명히 자기의 진짜 성격과 다른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증편향은 이런 컨텐츠들에 매몰되어 강화된다. 어 이런건 완전 나랑 맞는거 같은데? 어 이건 안맞네? 하면 회의적으로 돌아서서 뭐 엄청 맞는건 아니네 라고 생각해야하는데, 어 이건 안맞네? 부분은 빠진 채 잘 맞는 것만 맞춰서 내 MBTI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는 것이다. 외향형이니 내향형이니 하면서 말이다. 자기가 E인데 가끔 집에 있고싶어하면 내가 이럴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한다. 근데 또 어느 컨텐츠를 보면 E어쩌고인데도 애매하게 '가끔 집 밖으로 한 발짜국도 나가기 싫을 때가 있다' 라는 식으로 끼워넣어서 그래 맞아 내가 E인데 이럴 때 있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식이다. 

아무리 이게 4가지로 나누는 혈액형이나 12가지로 나누는 별자리보다 가짓수가 많아서 더 다양하게 사람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는 논리로 들어와도 가장 치명적으로 이 네 알파벳에서 빠진 점은 그 비율이 들어가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어떤 성격적인 면은 한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져 있을 수 있겠으나 다른 부분은 51대 49 정도의 비율로 간신히 앞서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율은 간과한 채 높은 비율의 알파벳만 골라버리니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누가 MBTI를 얘기할 때 '아 저는 0.8E0.1S0.4T0.9J라고 한다면 좀 더 믿음직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얘기하겠는가 그냥 ESTJ예요 하고 말겠지..과연 이 유행은 언제쯤 사그라들까? 사그라들면 그건 다른 성격지표의 등장때문일까 아니면 자연스레 인기를 잃어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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