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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도시락을 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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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요리를 하는 것은 나를 위해 보내는 즐거운 시간임에 틀림 없지만 이건 어쩌다 한 번 맛있게 한 1-2인분 정도 했을 때 얘기고, 이걸 일년 내내 반복한다는 것은 (어쩌면 몇년 더) 참으로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내가 나를 사랑해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굳이 요리가 아니어도 많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굉장히 먹는 것을 좋아하기에, 온갖 요리 유튜브 비디오를 섭렵하며 (육식맨과 취요남의 팬이다) 내 먹킷리스트에 하나 둘 메뉴를 추가해놓고 도전하려고 벼르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건 확실히 힘이 드는 일이다.


평소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실험과 TA, 수업으로 범벅된 평일이 지나고 주말을 맞이하면 왜 알약 하나로 식사가 퉁쳐지는 세상은 오지 않는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로 손하나 까딱하기 싫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이런 고민을 반복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홍두깨를 사다가 장조림을 잔뜩 하곤 하는데, 계란까지 조려서 1,2주는 너끈하게 버티게 해주는 치트키 반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페이스톡으로 엄마와 통화할 때 밥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곤 하는데, 매번 결론은 엄마에게 어떻게 맨날 이걸 하셨냐며 엄마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났다.


우리 엄마는 입이 짧다. 그래서 더 엄지를 세울 수 밖에 없다. 젊었을 적 뚱뚱했었다던 엄마는 지금 그 식욕은 온데간데없고 조금만 드셔도 배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 놓으신다. 이에 반해 고기반찬이며 국, 찌개 등 맛있는걸 좋아하고 또 많이 먹어야 성에 차는 아들내미한테 맞춰주시느라 고생 꽤나 하셨을 것이다. 내가 굳이 안먹어도 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상을 매번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는 간장에 조려지는 소고기를 보며, 계란을 삶아 껍질을 까며 깨닫고 있다. 엄마가 바쁜 아침에 간장계란밥을 자주 해주시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라 으레 짐작해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당시에 전혀 이런 고된 노동을 개의치 않아 하셨으며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다. 매번 아들의 아침을 차려 먹이시고 군것질거리를 만들어두시곤 해서 집에 머물면 살이 빠질 겨를이 없었다. 난 엄마의 세상 속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또 당신의 고됨보다 자식들 맛있는 음식 먹이는 모습이 당신의 행복이라고 매번 말씀하셔서 그 땐 그런가보다 했다.


근데 내가 미국을 오고 동생마저 나와 살게 된 이후 어느날, 이젠 장정 두명이 빠진 덕에 반찬 거하게 차릴 일이 없어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엄마는 후련한 마음에 말씀하신 것이겠지만 난 속으로 꽤나 충격을 받았었는데, 무수히 많은 날 동안 속으로 얼마나 저 생각을 되뇌이셨을지 가늠조차 안되기도 할 뿐더러 엄마는 그걸 나와 동생 모두 자취를 시작할 때까지 입 밖에 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만들기 전부터 생각해둬야 하는 다음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필두로 냉장고에 있는 남은 재료, 부족해서 추가로 사와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야하며 재료를 손질하고 맛에 대한 성찰을 수십 년간 했어야 하는 그 고됨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내가 내 입에 넣을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를 할 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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