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이상의 진로를 노리는 것은 개인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고민도 많고 생각해야 될 것들도 많은데, 아마 유학을 결심하는 분들이 하는 고민들 중에 내가 당시에 했던 고민들이랑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되었다.
0. 내가 돌아온 길
나는 박사과정에 입학하기까지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2020년 9월자로 미국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화학과로 입학해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고, 석사를 지원해서 2년을 더 공부하고, 미네소타에서 교환학생을 1년 한 후에야 마음을 다잡고 박사과정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스물 아홉에 들어왔으니 학사졸업 후에 바로 들어오는 경우인 스물 네살에 비해서 5년 차이가 나는 것이니 빠른 케이스는 아니라고 하겠다.
1. 고민의 시기
석사과정을 오기 전인 학부생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뜬구름 잡는 생각이라도 미국가서 박사한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다만 군대를 갔다오고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고, 학부생으로의 진로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화학과의 경우 기업에 들어가서 품질관리(QC/QA) 쪽으로 많이 취업 한다고 들었고 (제약회사 QC/QA는 석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혹은 영업직을 한다고도 들었다. 화공은 학사로도 충분한 것에 비해 화학과는 그만큼 문이 활짝 열린 느낌은 아니었다. 전공을 살린 일이더라도 반복 노동(QC/QA) 혹은 감정 노동(영업직)에 가까운 일이기에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지도 의문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같은 과 친구들이 다양한 경로로 빠졌는데, PEET 보고 약사 된 케이스가 있고, 공무원, 공기업 들어간 친구들 학원 강사가 된 친구도 있고, 국내 박사를 간 친구도 있고 전공 안살리고 금융권으로 간 친구도 있었다. 혹은 직장 다니다가 대학원으로 전향한 케이스도 있었다.
당시 여러 갈래로 빠지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사실 돈만 많이 주면 그게 무슨 대수겠냐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돈을 위해서 빨리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돈이 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축복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더 느낀다), 좀 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연구개발쪽으로 빠지고 싶었다. 이 생각이 석사과정으로의 발판이 되었다.
학부 1,2학년 때 국내박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석박통합이라는 좋은 제도도 있고, 국내박사면 병역특례로 시간도 절약할 수 있으며, 사회로 훨씬 빨리 나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연구해야하는 (최소) 5년여 기간 동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이 이곳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는 지인 중에 석박통합으로 갔다가 여러 요인으로 석사만 받고 나온 케이스도 있었다. 그래서 석사를 먼저 해보고 되면 박사까지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컸다. 아마 국내박사를 할 생각이었다면 학부 초기부터 이쪽으로 진로를 잡고 3,4학년 까지 군대를 안가는 것을 생각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겠다.
2. 석사 과정에서의 고민
석사과정을 하는 동안은 확실히 학부생 때보다 새로 알게되고 배운 것이 많았다. 학부 때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직접적인 실험 테크닉을 익힐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의 일환으로 하는 실험은 결과가 정해져있고, 다루는 테크닉도 제한적인 데에 반해서 석사과정에서는 저널에 내기 위한 연구를 하며 다양한 기기들을 다루며 내 체력이 되는 한 실험을 많이 할 수 있었기에 시간 들인만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록 높은 IF (Impact factor, 영향 지수)를 가진 저널이 아니었어도 내 이름으로 나오는 논문이 저널에 게재되는 것도 굉장한 기쁨이었다. 저널 홈페이지에서 첫 내 이름이 실린 논문을 보는것, 그리고 누군가 내 논문을 인용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더욱더 동기 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도 계속 진로고민을 했는데, 마침 내가 있던 연구실은 지도교수님께서 미국에서 1년 영어공부할겸 실험도 더 배울겸 교환학생 비슷하게 다녀올 수 있게 하는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다. 사실 이런 연구실이 많지는 않다 (내 주변 경험으론 아예 없다). 보통의 교수라면 석사에서 괜찮게 한다 싶은 친구들에게 박사과정을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본인 지도하에 열심히 병아리부터 닭까지 만들어놨는데 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연구실의 경우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학사석사, 미국박사, 포닥을 거친 분이셨고, 박사를 가게 된 과정도 지도교수님의 석사 지도교수님께서 박사는 미국에서 하라는 권유를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당신께서 이런 경험을 했기에 자신의 제자들도 박사는 미국가서 하고 오라고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우리 연구실 모든 학생들이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교수님께서는 미국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큰 경험이라고 생각하셔서 미국에 계신 아는 교수님들 (본인의 박사, 포닥시절 동료들)께 부탁하셔서 교환학생 비슷하게 다녀오게끔 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미국을 1년간 다녀왔고, 여기서 마음을 바꿔서 박사과정까지 진학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했다. 미국 교환학생 안다녀오고 혹은 다녀와서 취직하는 친구들은 또 제약회사, 삼전 같은 기업 등으로 대체로 잘 빠졌다. 이런 선배들과 동기들을 보며 나도 미국 다녀와서 결정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박사과정으로의 결심
이런 환경에서 지내다가 어느새 나도 석사를 마칠 때가 되었고, 나름의 유예기간, 언제 미국에 살아보겠나 하는 생각, 등등을 가지고 낯선 미네소타에 교환학생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박사과정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또 실험실 굴러가는 모습 등을 직접 두눈으로 보고 경험하니까 치기어린 생각이지만 박사과정이 생각보다 막 너무 힘들고 그럴 것 같지 않아보였다 (미쳤던게 틀림없다). 석사과정 당시 우리 연구실 출근 시간은 9:30 am - 8:30 pm 이었던 반면, 당시 같은 연구실 친구들은 오전 10시 11시쯤 와서 5시에 교수님 퇴근하시면 어지간히 급한 실험이 아니면 끊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 때 문득 '저렇게 한 5년을 하면 박사학위가 나온다고?' 하는 생각에 나라고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싶었다. 그 때부터 부랴부랴 토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무기화학 분과라서,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이미 테뉴어를 받으셔서 (석좌교수셨다 심지어) 등의 이유로 연구실이 덜 힘든 환경이었던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정말 저렇게 생각했었다. 사실상 테뉴어를 받지 않는 조교수의 랩이나, 분과마다 다르긴 하지만 특히 유기화학 랩의 경우에는 훨씬 근무 환경이 빡세다고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라서 멋모르고 덤빈 감이 없잖아 있다.
아 한가지 더, 박사과정으로 넘어가면서 가지게 될 직업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도 한 몫 했다. 마린만 뽑아서도 게임을 할 수 있지만 탱크도 뽑아보고 싶고 배틀크루저도 뽑아보고 싶어서 팩토리, 스타포트에 피직스랩까지 달아보려는 것이다.
석사에서 마치면 취직이 끝이지만 (팩토리에서 벌쳐만 뽑음) 박사는 학계로의 길이 열리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 (애드온 달고 탱크뽑음), 박사로의 경력이 연장되어 석사보다 더 주체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기왕 하는 일이면 시켜서 하는 일보다는 나에게 어느정도 권한이 넘어와서 일하는 것이 훨씬 동기부여에 좋기도 하고 말이다. 어릴 적에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공부 안하냐고 다그치면 하려던 마음도 사그라들었던 것처럼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래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일을 하려면 박사학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한 해를 열심히 어드미션에 쏟아붓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진작부터 이렇게 생각해서 준비했으면 학부 유학을 준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혹은 미네소타를 안들르고 바로 준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결론적으로는 지금 학교까지 오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석사때 쓴 논문이며 박사과정 지원하며 미국 지도교수님께 받은 추천서까지, 여러가지 요소가 날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학부부터 준비해서 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 대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고 나는 그 당시에 내 마음이 확고하지 않았기에 이리저리 두들겨보다가 온 것 같다.
4. 끝으로,
박사과정은 확실히 여러 배경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학사까지야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향하는 목표지만 박사까지는 선택이 마치 정해진 테크트리 같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직장을 다니다가 학위를 하러 넘어오신 분들도 많았고, 나처럼 석사까지 다녀오신 분도 있었고, 학부에서 바로 넘어온 케이스도 있었다. 다양한 케이스에서 유학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기에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나도 많은 정보를 인터넷 다른 유학생분들이 올린 글에서 얻었기에, 이 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어서 글을 썼다. 모쪼록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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