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10년 간 정든 공릉을 떠나며 쓰는 글

728x90

  스무살 부터 하던 공릉살이를 10년만에 끝낸다. 본가까지 기내용 캐리어를 부지런히도 끌고 지하철로 오간 덕에 짐은 차로 한 번에 옮겨도 될만큼 줄어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 끼니를 뭐로 할까 생각하다가 꼬리를 무니 이젠 진짜 외부인으로 공릉을 '방문'하러 온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10년 간 내 생활의 중심이 공릉을 중심으로 돌았다. 20대의 전부를 함께해준 고마운 곳이다. 학과, 동아리, 연구실 생활까지 수도없이 학교를 드나들고 주변 음식점과 술집을 돌아다니며 돈과 시간을 들였다.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여전히 건재한 곳들도 많고 스리슬쩍 바뀌어서 이전에 여기가 뭐였더라..생각하게 만드는 곳도 많다. 다음에 왔을 땐 더 기억이 안날것이다. 아마 나중엔 지인들과 와서 무용담처럼 여기 예전에 뭐있었는데 기억나? 할 수도 있고, 혼자 나즈막히 이야 공릉 많이 좋아졌네 하며 감탄할 수도 있겠다. 

  이미 10년간 공릉은 참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학교에 새로 올라간 건물이 한 두개가 아니고, 공리단길혹은 공트럴 파크로 불리며 예쁘장한 가게들 들어선걸 보며 몇 번쯤 나중에 공릉에 다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네 좋아지는 동안 나도 얼만큼 좋아졌나. 이불킥 할 기억들이 버젓이 자랑할 기억들보다 한가득이긴 하지만 이불 속에서 뻗은 무수한 발길질 덕분에 지금 이만치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수많은 기억들을 머릿속 어딘가에 남긴 채 다시 새로운 곳에 정 붙일 준비도 해야한다. 물론 새로 붙일 정을 공릉에서 떼어내는 것이 포스트잇 보다는 오래붙여둔 청테이프 같아서 마음에 찐득함이 그득하다. 괜시리 드는 생각일 것이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어느새 아련했었는지도 모를 희미한 기억이 되어 점점 서랍속 깊숙한 곳으로 밀려밀려 갈 것이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점은 밀려가되 사라지진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중에 먼지 후후 불고 소매로 슥슥 닦아 광을 내줄테니 사라지지 말고 한켠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로운 기억들을 공릉에 집어넣으며 계속 나름의 추억을 이어나가고 싶다. 

  이번엔 5년 정도 붙여야 할 것이다. 아마 조금 덜, 혹은 조금 더 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30대의 중간쯤일텐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거기서 이삿짐을 정리하고있으려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