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시력이 좋았으나, 중학교 3학년 쯤 되면서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 결국 안경을 끼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 중에 안경을 안 끼던 사람이 나였는데 결국 나도 끼게 되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안경을 끼는 것 자체에는 크게 귀찮다거나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으나, 한가지 확실한 안경에 대한 생각 하나는 하나는 안경을 쓰지 않은 내가 더 익숙하고,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들어와서는 평소에 안경을 계속 끼다가도 발표, 공연, 등이 있을 때에는 항상 렌즈를 대신 껴서 맨얼굴로 나가곤 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만났던 한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내가 이렇게 렌즈와 안경을 번갈아 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렌즈를 끼곤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렌즈를 끼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여러 일로 바쁠 때 몇 번 안경을 끼고 데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바쁜 일이 해결되고서 다시 렌즈를 끼고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날 만나자 마자 하는 얘기가 '오늘은 렌즈 꼈네?' 하는 것이었다.
그 뉘앙스가 상당히 거북했는데, 단순히 오랜만에 렌즈를 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안경을 끼고 자신을 만나는 것은 덜 신경쓰고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말투에서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 헤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걸 하나하나 생각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지금은 안경낀 게 잘 어울린다는 사람과 잘 만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바쁠 때 안경을 끼고 나갔던 적이 있는데, '어? 안경끼고 나온 것도 잘어울린다' 고 처음으로 이야기 해줬던 사람이다. 앞선 경험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으레 하는 립서비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한마디 이후로 나는 종종 안경을 끼고 나가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람을 볼 때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고 존중해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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