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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생각

석사생활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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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한국에서 석사과정 혹은 그 이상에 대한 생활은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책으로 나온 경우도 있고 (과학자가 되는 방법) 나도 석사생활을 하면서 많이 참고했던 글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써두는 건 나중에 내가 되돌아보고 싶기도 할 것 같고 혹시나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진로결정에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표본은 많을 수록 좋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적는 모든 글들은 나의 가치관이고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 과정에서 생각했던 그 당시의 판단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지면 좋겠다.

 

 

 

1. 왜 석사생활을 하게 되었나?

 

-중, 고등학교 때 화학을 다른 과학 과목들보다 좋아했던 덕분에 대학교 학과까지 화학과로 정하고 들어와서 지내다보니, 생각보다 학부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이론적인 내용 밖에 없었다. 실험도 4시간씩 배정이 되어있긴 하지만,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뭔가 주체적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경우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니 아무리 내가 전공이 화학과여도 실험다운 실험을 제대로 못해봤는데 이대로 학사가고 졸업하면 제대로 회사 들어가서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 학부생일 때, 화학과 학사로 회사에 들어가도 마땅히 주도적인 역할을 못한다고 들었다 (어느 전공, 어느 직군이나 그렇겠지만). QC/QA (Quality Control / Quality Assurance) 등의 직무는 단순 반복작업도 많다고 들은 것도 있다. 결정적인 이뉴는 들어가서 '대체되기 쉬운 역할'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에 돈을 좀 나중에 벌더라도 더 배워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면 내가 나가면 큰 손실이 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좋은 기회에 지도교수님께서 학부연구생으로 들어와보라는 기회도 주셔서 지내면서 더 마음을 확실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원을 생각할 때 학부 커리큘럼만 배운 상태에서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정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현재는 교재에서 배우는 내용은 정말 기초로 하고 훨씬 더 응용하고 뻗어나가는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모집할 때도 open lab 이라고 해서 여러 실험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공식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고 혹은 자기가 직접 찾아가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한데 어쨌든 나는 그나마 쉽게 흥미있는 분야를 찾아서 다행인 것 같았다. 

 

 내가 무기화학에 흥미가 있었던 이유는, 착물의 색깔 변화가 매우 다양하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생화학은 이미 다마고찌라는 웃픈 별명아래 내 밥은 못챙겨먹어도 세포 밥은 줘야한다는 썰들을 들어왔어서 일찌감치 제꼈다. 생물 전공대신 화학으로 온 이유도 같다. 또, 뭔가 화학하면 실험이지! 하는 나만의 생각에 맞춰서 유기, 무기, 분석 중에서 정했는데 여기서는 무기화학이 눈으로 직접 변화도 보고 분석까지 해야하는 작업을 통틀어서 해야했던지라 더 재밌다고 느꼈다. 착물을 만들 수 있는 리간드 합성 테크닉도 있어야 하고, 이걸 여러가지 기계들 통해서 어쨌든 분석도 해야하니까 하나만 엄청 깊게는 아니어도 두루 경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이유도 크다.

 

 한 가지 그당시 걱정이었던 점은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간 시점에서 그대로 눌러앉으면 내가 너무 알아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대 대학원생이 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느낌도 들고, 나중에 더 재밌는 분야가 생겼을 때 아 왜 그때 안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까봐였다. 그래서 지방의 여러 과학기술원들과 서울 다른 대학원들도 알아봤었다. 여기서 내가 걱정했던 점들은 타대생의 텃세였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아무리 업무가 힘들어도 같이 지내는 동료들이 괜찮으면 오히려 견디기 수월하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끼고 왔기 때문에 타대생으로서 가는 것이 걱정이 많이 된 것도 있다. 오픈랩도 다녀오고 했었는데, 자대생으로서의 장점, 서울에서 가족과 지낼 수 있다는 점 (상당한 비용절약), 자주는 못해도 가끔이라도 누리고 싶었던 인프라들 등을 고려했을 때 결국 나는 타대학원으로 가기보다는 자대에 남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뒤로는 타대학원을 갔을 때의 장점을 모두 자대에서도 누릴 수 있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생활을 했다. 나중에 타대로 안갔던 것을 내가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좋았던 점

 

-대학원을 들어와서 좋았던 점은 내가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바라는 제자의 이상적인 형태). 물론 체력적으로 고된 점은 있다. 합성이라고 항상 100%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분리하는 과정, 내가 합성한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 등등 모두를 내가 알아서 해야하고, 또 이 과정을 한사이클씩 할 때마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세척을 요하는 유리초자들을 볼 때마다 중노동이 따로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고생고생해서 얻었을 때 느꼈던 그 성취감은 정말로 기쁜 과정이었다.

 

 한 번은 우리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촉매의 반응 메커니즘을 확인하기 위해 PPAA라는 물질을 합성해야 했던 적이 있다. 예전 선배들이 했던 실험노트들을 참고하고 최근에 나왔던 실험 논문들도 참고하면서 합성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쓰이는 Phenylacetyl chlroride라는 물질이 냄새가 독해서 후드에서만 써야하고, 나중에 용매를 날리면서 실험실 전체에 냄새가 날리는지라 대체로 몇명 나오지 않는 주말에 혼자 나와서 실험을 했다. 근데도 아무리 봐도 원하는 생성물이 안나오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어서 이걸 그만할까 싶기도 했는데, 이게 합성이 안되면 다음 스텝을 밟을 수가 없어서 거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해봤던 것 같다.

 

 그래서 도저히 실험실에서 선배들이 했던 방법으로는 안되는 것 같길래, 해외논문에 나와있는 저자에게 메일까지 보내서 물어봤다. 내가 이거까지 이렇게이렇게 했는데 잘 안된다. 오래됐겠지만 이걸 하는 방법이 기억나느냐 해서 메일로 답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은 재결정 과정에서 내가 제대로 못했던 것이 있었는데 이걸 마무리하면서 실험실에서 기존에 하던 방법보다 순도가 높은 생성물을 얻어서 넘겨줬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이걸로 분석하던 친구가 사용전에 순도 계산을 해보니 이전에 쓰던 것보다 너무 높아서 놀랐다고 했을 때 느낀 그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논문 교신저자 메일주소까지 확인해서 보냈던 메일에 대한 답장 이후에도 몇 번 더 여쭤봤었다.

 

-시켜서 하는 것도 대학원생활에서 없잖아 있긴 하지만, 실험적인 측면에서 내가 쭉 돌려보고 분석하고 했던 기억들은 확실히 학부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르겠는 결과들을 교수님과 혹은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결과를 내고 논문에까지 넣어가는 과정은 마치 요리를 엄청 열심히 해서 사진 찍고 인스타에 올려서 좋아요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 '기록' 이라는 의미에서 실험 뿐 아니라 논문을 쓰는 것 까지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재밌는 일이었다. 

 

-논문을 쓰는 작업은 매우 고되다. 생각했던 데이터보다 결과가 안좋아서 메리트가 떨어지는 경우도 더럿 있었고, 쓸만한 것 같았는데 그다지 실용성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고 참으로 다양한 리간드들을 분석하면서 석사생활을 보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물론 배우는 것도 많았고 테크니션으로서의 능력도 늘어서 이런저런 잡다한 스킬도 생기고 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생기는 단점이 내가 어쨌든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미루고 미루다가 닥쳐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조절하면서 하느라 부단히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3. 안 좋았던 점

 

-내가 선택한 길이라 안좋은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취직과 대학원을 가르는 큰 차이는 수입이라고 본다. 물론 대학원도 있고 월급도 있지만 취직했을 때보다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므로 먼저 취직한 친구들의 소식을 바라보면서 속이 쓰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 나를 위한 투자를 하는거다 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다행히 학부 때 만큼 돈이 들진 않아서 부모님께 덜 죄송하기는 했다. 선물은 못 갖다드려도 폐는 안끼칠 수 있는 정도..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제일 크다고 하겠다. 논문 마무리 할 때 쯤이면 교수님 푸쉬도 어마어마해지고 나 스스로도 얼른 마무리하고픈 마음에 낮밤 가리지 않고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연구실 들렀다 볼 일 보러가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또 마인드 컨트롤을 제대로 안하면 오전과 낮시간 허비하고 밍기적대다가 밤부터 실험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선배 중에 한명은 야근 한 번도 안하고 논문 잘 써서 졸업했는데, 일과시간에 무서운 집중력으로 실험하고 논문 쓰는 스타일이었다. 나도 최대한 암묵적 퇴근시간 (우린 9:30 - 20:30이었다)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4. 기타 하고싶은 말

 

-정말이지 자유로운 근무 환경이라는 것에 숨겨진 의미는 이 자유에 책임을 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책임 없이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라 이걸 절제하고 실험실에 붙어있으면서 결과를 내는 과정은 정말로 자기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항상 스케쥴러, 다이어리 등을 펴놓고 실험은 어느걸 해야하고, 논문은 어디까지 써야하며, 기타 다른 일들은 뭘 해야하는지 매일 빼곡히 적어놓고 이를 소화하느라 시간을 쪼개고 할 일을 정하는 습관을 들이는데에는 거의 고3 때 만큼의 시간관리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써놓기가 고3 같았으며 행하기는 고3 만큼은 아니었다는 것이 함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친구들 만나서 노는 것 좋아하고, 심지어 오케스트라도 계속 취미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까지 소화하면서 실험실 생활을 소화하려면 정말로 시간을 잘 쪼개야했다. 그런면에서 나는 시간을 빼서 놀기 위해서 근무 시간에 바짝 일하고 퇴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는 의경으로 복무하던 시절 철야근무를 하고 나면서 밤샘 근무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급하다고 밤을 새거나 하지말고 낮에 부지런히 일해서 밤에 자자는 마인드가 강하게 박혔기 때문이다. 다른 직장인들도 그렇겠지만, 시켜서 하는 일이 회사원 만큼 많지 않은 대학원생에게 생활패턴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실험도 하고 논문도 쓰다보면 퇴근이 늦어지긴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10~11시는 넘기지 않으려 했고, 아침 출근 시간은 무슨일이 있어도 늦지 않게 지켰다. 결국 학부연구생 포함 3년동안 지각은 하지 않았고 지각비 또한 한 푼도 내지 않아서 지각비로 진행했던 회식이 더욱 달콤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가졌던 마음가짐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우고 나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유기합성 테크닉, 착물, 기기 다루는 법, 뭐 기타 등등 전반적인 실험실 생활 등을 여기서 짧은 시간에 소화하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아직도 미숙한 부분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래도 실험실에 있는 모든 기기나 실험 설비등을 다룰 줄 알고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실험실을 나오기 전에 후배들에게 모두다 이걸 알려주고 나오려고도 했다. 꼭 알고 졸업해야 할 것들 목록을 만들어서 나중에 추가로 공부를 더 할 계획이 있든 혹은 취직을 하든 간에 시간 들인 것이 아깝지 않아야 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원도 일반적인 기업보다 크기가 작을 뿐, 사람 사는 사회인만큼 사람사이 관계도 되게 중요하다. 교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이건 내가 이렇게 해야돼! 라고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나의 지도교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면서 이득이 10이라고 할 때, 이걸 둘이서 나누게 되면 상대가 6정도를 가졌을때에서야 상대는 공평하게 5:5로 나뉘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약간씩 덜 가진다고 생각하고 지내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러번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도 어쩌다 같이 코웍할 일이 생기면 최대한 상대의 편의를 봐주면서 해주려고 노력했다. 사람사이 관계가 좋으면 실험이 힘들어도 연구실 출퇴근이 괴롭지 않다. 그러니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하면서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5. 석사과정을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개개인의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며,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다양한 만큼 뭐라 단정지어서 이야기 할 순 없겠지만, 시켜서 하는 일보다 스스로 이것저것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석사과정은 한가지 좋은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원도 시켜서 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기 실험을 하고 결과를 다른 사람과 토의해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은 확실히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고민하는 과정은 머리도 아프고 답이 안나와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보다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학원을 추천하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미국은 학부 이후로 바로 박사과정 진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석박사 통합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부 - 박사 5년컷인데, 5년까지 할 용기나 동기가 마땅치 않다면 석사과정으로 경험해보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박사과정을 진학할지 말지를 학부 수준의 생각에서 하는 것이 아닌, 연구실 생활을 더 해보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박사과정 진학시에 내가 쌓아둔 경험은 학부 차원에서 지원하려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절대적인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써둔 논문이 있다면, 발표한 포스터가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학부 때 받아가는 교수님들의 추천서 보다는 훨씬 더 양질의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연구실 생활을 잘 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래서 꼭 2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2년은 누구 재수해서 들어오고 누구 휴학해서 여행좀 다녀오고 하면 다 똑같아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 가치가 더 올라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학부에서 바로 박사가는 것만큼 좋은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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