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가 화학과 바이올린을 각각의 카테고리로 흥미있게 다루고자 만든 블로그였지만 이 둘을 동시에 아우르는 논문이 올해에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흥분해서 허겁지겁 논문을 읽은다음 리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걸 화학 카테고리에 넣을지 바이올린 카테고리에 넣을지 고민했으나, 과학적 사실이 더많으므로 화학 탭에 넣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논문은 2021년 6월, 대표적인 화학 저널인 Angewante Chemie (앙게반테 케미) 6월호에 실렸으며 명기라고 불리는 스트라디바리, 아마티, 과르네리 등의 나무 조각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기존의 악기들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어서 칭송받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185억짜리 바이올린! 초고가 이유는 ‘벌레’ 때문? (naver.com)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싶으신 분은 상기의 기사로 만족하실 수 있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논문도 같이 읽으면서 들었던 여러 흥미로운 점들에 대해서 좀 더 다뤄보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에서 이런 명기들이 사랑받는 이유들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었으나 이들은 주로 악기의 구조나 사용된 바니시(varnish)에 국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을 모방해 보아도 소리 퀄리티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것으로 보면 이것 말고 다른 요인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연구에서 그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명기들의 소리는 그들이 악기를 외부의 위협요인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사용한 약품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제시한다.
우선 그들은 악기를 구성하는 판의 두께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기존 제작자들은 두께보다는 전반적인 구조에 집중해서 모방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현대의 사운드보드는 3.0 mm - 3.5 mm의 두께를 보인 반면, 명기들은 2.0-2.9 mm의 두께를 보였다고 한다 (다른 연구결과에서 얇은 사운드보드가 2-4 KHz 대역에서의 소리 세기를 4-6 KHz 대역에서의 소리 세기보다 증가시켜서 더 밝고, 덜 거친 소리가 난다고 제시한 적이 있다). 결국 두께는 최대 1 mm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1 mm는 큰 두께 차이가 아니지만, 바이올린의 세계에선 꽤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보통의 바이올린은 3.0 mm를 기준삼았다고 하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길 수 있는 크랙 등을 방지하기 위한 두께라고 한다. 얇을 수록 크랙이 생기기 쉬우니 말이다. 이렇듯, 얇은 판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오랜 세월을 견딘 명기들의 얇은 판이 유지된 비결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수백년 전 나무가 자랐던 환경이 지금과 다른 것이 이유일 것이다 라고 제기하기도 했지만, 분석에 따르면 그 시간동안 나무의 구조나 구성성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그래서 연구자들은 다른 외부적인, 인공적인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분석을 이어간다. 여기서 잠시 첨언을 하자면, 그들이 분석에 사용한 나무 조각은 매우 적은 양을 바이올린 (바니시 칠이 되어있지 않은 안쪽면)에서 얻었다고 한다. 바이올린 전문가에게 의뢰를 맡겨서 30-300 mg의 샘플(0.03 g - 0.3 g)을 얻었다고 하니, 어느정도 바이올린 악기의 희생이 있었던 셈이다.
이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라도 하려는듯 여러 화려한 분석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여러 방법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 연구를 위해 싱크로트론 (입자가속기의 한 종류)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싱크로트론, synchrotron은 위 사진과 같은 거대한 원형 건물에서 입자를 가속시켜서 샘플에 때린다음 나타나는 스펙트럼 등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원자의 소립자들이 이것을 통해 발견되었다) 전세계에 이 시설이 많지 않고 (미국에도 세개인가 밖에 없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는 포항공대에 있다), 그러니 항상 샘플이 밀려서 예약하고 찍으러 가는데에 고생을 좀 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아무튼 이 기계를 이용해서 나무조각들의 세부 구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세부구조를 얻은건 좋았지만, 여기서 특별한 차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이 조각들에 들어있는 구성 원소들의 함량을 파악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Al이 명기들에서 더 많이 나왔다는 점 (이것이 나무 고분자들과 결합하여 구조적인 측면, 소리의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한다), Na, Cl, K 등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토대로 볼 때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 견딜 수 있었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고 한다.
1. 곰팡이와 벌레로부터의 보호 (borax나 metal sulfate등의 사용을 통해 막았을 것으로 추정)
2. 나무 고분자 조직을 이어주는 Alum(명반, 백반)의 존재
3. NaCl(소금) 을 넣어서 건조한 날씨에서 과도한 수축을 막음
4. 2,3의 처리로 나무가 뻣뻣해지는 것을 막음
5. 약한 염기 처리로 hemicellulose 구조의 부분적인 절단?을 통해 수분 흡수를 줄이고 (hemicellulose가 흡습성이 좋다고 한다), 구조적 안정성을 증가시킴
이런 요인들로 나무가 오래 보존되고 얇은 두께에서도 더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것들이 소리에까지 어떻게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다. 앞선 처리들이 나무의 탄성을 어떻게 좋은쪽으로 변형시켰을 수도 있고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는 등 변수가 많아서 딱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든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이 제시한 것은 다소 슬프게 들리기도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명기들의 수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는 400년 누구는 800년까지 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나무를 이루는 세포벽 구조의 붕괴로 악기의 수명이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기술이 발전해서 이 악기들을 보존할지 모르겠지만 영원토록 보존되어 대대손손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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