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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생각

내가 화학과로 전공을, 무기화학으로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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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적부터 과학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다가 화학과로 진로를 정한 까닭은, 크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누어지는 고등학교 과학을 하면서부터였다. 일종의 소거법으로 화학이 남았는데, 물리는 내가 잘 못해서, 생물도 관심은 있는데 세포를 다루거나 하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지구과학은 우주로 가든 땅으로 가든 뭔가 스케일 큰 걸 연구하는 것 같았는데, 나랑은 너무도 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제외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지구과학은 우주 파트를 제외하고는 크게 재미도 없었고, 우주파트를 하자니 하늘만 보고 사는 직업을 하는건가 싶어서 제외했더랬다.

 그에 비해 화학은 지속적으로 내 흥미를 자극 했는데, 기본적으로 무슨무슨 과학축제를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화학실험이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색깔이 휙휙 변하고 상이 확확 변하는 이런 '자극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과학 분야는 화학 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과포화된 손난로 용액이 고체로 변한다거나, 염화암모늄용액이 물과 만나면서 엄청나게 시원해지고, 넣은 금속염에 따라서 불꽃 색깔이 달라지는 등,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선사하지 못하는 이런 변화들에 정신을 못차렸던 것 같다. 

  그리고 전공을 진짜로 정할 때 화학과 화학공학과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공학은 수학을 많이 한다고 해서 뺀 이유가 첫 번째, 두 번째로 그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공학보단 근본인 화학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화학과로 정했다 (고등학교 때도 과탐 II과목 선택할 때 근본과목인 물2화2 해야지! 라면서 두개를 골랐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별 시덥잖은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다행히 대학교에서 전공 공부를 계속하면서 흥미를 잃지는 않았고 석사까지 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화학과로 온 건 그렇다 치고, 어쩌다 무기화학을 하게 됐냐면, 다른 실험 수업(학부 때 지도교수님이 꼬셔서 이렇게 됐다. 물론 연구 주제도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닌데, 미천한 연구 경험에 아는 게 얼마나 있다고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형광으로 색이 예쁘게 나오길래, 그리고 나름 착물 만들고 색 변하는 게 흥미롭기도 해서 학부연구생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 계기였다. 그러다가 나름 형광 보고 색변화 보는 것이 나쁘지 않아서 이쪽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지도교수님께서도 원래 유기화학 잘해서 그쪽 가려고 했는데, 학회인가 회식인가에서 옆자리 앉았던 무기화학 교수님의 달콤한 말에 무기화학으로 발을 들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박사 와서도 무기화학을 계속 하려고 한 이유는 석사 때 했던 연구가 뭔가 무기화학을 발가락 정도만 걸쳤지 푹 담갔다가 나온 게 아니라 찝찝해서 그랬다. 무기화학 했다 소리 들으려면 크리스탈도 좀 키워보고 X-ray도 좀 찍어보고 하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에 무기화학을 계속 하기로 했다. 석사 때 유기나 바이오 했어도 아마 비슷한 생각으로 같은 분야로 계속 밀고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진로의 갈림길에서 이런저런 계기로 지금의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어릴적부터 나는 무기화학에서 이름을 날리는 과학자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고 무기화학을 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테니 나 말고도 진로를 정하는 과정은 많은 우연이 겹쳐 이루어진 결과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번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내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 잘한일이었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것, 내 결정을 정당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열심히, 좋은 결과 얻으려고 노력하다보면 또 다른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이고, 어떤 선택을 할거고 또 그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증명하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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