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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나려 커피를 한 달 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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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까지는 전혀 커피를 먹지 않다가 (카페인이 수능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안먹었다) 대학교에 와서 카페를 드나들 일이 많아지면서 커피를 많이 먹게 되었다.

 

 

크게 커피를 먹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먹으면 잠이 깨서

2. 카페에서 뭔가 사먹는다고 할 때 집에서 못만들어 먹는 걸 먹는게 이득인 것 같아서

(티백에 넣고 우리는 차 종류는 안먹겠다는 뜻)

3. 나중엔 아메리카노만 먹기로 갈아탔는데, 단 음료를 먹으니 살이 찌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까지 들어가면서 정말 온갖종류의 커피를 다 먹었다. 스틱커피도 이디야, 카누, 네스프레소 등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나중엔 모카포트를 사서 원두를 갈아 우려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저가 커피시장 (쥬씨, 900아메리카노 등등)의 확대 도입은 나에게 저렴하게 커피를 먹을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운 힘의 원천이었다.

 

많이 먹는 날에는 서너잔씩도 너끈히 먹었고, 오전 9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일단 보온병에 얼음넣고 미니카누 두개 넣고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커피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날은 시험이 다 끝나서 커피를 먹어야겠다는 이유를 굳이 찾지 못한 어느 주말이었다. 종일 집에서 쉬면서 커피를 안먹었는데, 정말로 머리가 두동강이 나는 듯한 두통을 겪었다. 그게 주말 내내 갔다. 처음엔 몸이 고생해서 아픈가 싶었는데, 어디서 카페인 중독 증상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나서 아 이게 그 카페인 때문에 나타나는 두통인가보다 했다. 그게 토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이틀가량을 날 괴롭혔다.

 

그러다가 평일이 되니 다시 커피를 안 먹을수가 없겠다는 생각, 있는 커피, 원두는 다 먹어야지 하는 생각, 또 친구들 만나거나 카페갈일 생겨서 주문하게되면 안먹을 수 없는 아메리카노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또 한동안 커피를 먹게되고 나중에는 주말에도 커피를 챙겨먹기에 이르렀다.

 

물론 커피의 향과 맛, 먹고 나서 개운해지는 느낌 자체는 싫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글까지 쓸 정도로 커피를 오래 끊게 된 이유는 미국에 와서부터였다.

 

연구실의 중앙 테이블, 거의 카페 수준이었다.

미국 연구실에 와보니 여기는 통원두를 사서 그라인더로 갈고 필터로 내리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먹었다. 아침에 누구는 항상 테이블에 앉아서 원두를 멍하니 갈고있고, 전기포트에 물은 끓고있었다. 나도 커피를 좋아했고, 드디어 핸드드립을 먹어보나 하면서 나도 배워서 매일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가 여느때처럼 또 주말에는 연구실을 안나가니 집에서 안먹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어서 주말에도 커피를 먹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 연구실 멤버중에 커피를 안먹는 친구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자신이 카페인에 의존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에 커피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커피를 안먹는다고 했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못들어봤던 것 같았다. 의존이라..

 

 

그래서 주말의 두통과 친구의 말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심각한 현자타임과 함께 '그러게, 나는 왜 이 화학물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유학생 신분이라 커피 맨날 사먹을 수도 없는 점을 생각해서 커피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말 갑작스럽게 커피를 끊게 되었는데, 역시나 주말 이틀이 무기력해지고 평일에 커피를 안먹는 것이 나름 고역이었다.

 

 

나름 고역이라고 하는 말은, 카페인을 안먹어서 손이 떨리거나 막 기분이 안좋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하게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먹고 오는 느즈막한 졸림기운 때문에라도 커피가 먹고싶었으나, 어찌어찌 참아내고자 일부러 운동도 시작했다. 원래 주말에 가끔 몸풀러 가는 농구 정도였으나, 평일에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확실히 좋아진 점은, 잠의 깊이가 깊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많이 먹은 날은 잠이 안오기도 할 때도 있고, 잠이 들어도 뭔가 눈만 감았다 뜬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커피를 안먹으면서 부터는 머리대면 저녁에 그냥 잠들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커피를 먹을 때는 잠에 들 때 예민해서 주변 소음에 민감하고 그랬는데, 끊은 뒤로는 그게 없어졌다. 어지간한 소음에 잘 깨지 않는다. 이미 난 졸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누웠기 때문이리라.

 

 

또 깨어있는 상태에서 집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커피를 먹으면 강제로 오랜시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을 많이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밤을 새겠다고 마음먹은 중간고사 전날의 대학생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에이 늦게 갈건데 천천히 하지뭐 하는 식이다. 또 커피를 너무 중요시여겨서 커피를 먹지 않았는데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해야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가령 실험을 뭘 해야하는데 아 커피먹고 반짝 할 때 해야겠다. 하는 식으로 스케쥴을 미루는 식이다. 사실 이정도에 이르렀을 때는 카페인에 너무 둔해졌던 것 같다. 커피 진하게 먹어도 적당히 반짝한 느낌?이었다. 

 

 

수면의 질이 높아짐과 동시에, 일부러 자정 전에는 잠을 자려고, 7-8 시간의 수면은 하려고 노력을 했다. 결론적으로 운동, 수면 두가지를 카페인과 바꾼셈인데, 이 편이 나에게는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카페인을 먹어서 오는 그 반짝한 느낌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룸메들과 함께 사는 상황에서 잠자리가 예민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 운동을 하면서 낮시간에 졸려지는 빈도가 확실히 낮아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 할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낮에 밥먹고 잘 못버티고 커피에 의존하게되는 건 체력이 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진즉 운동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게 아쉽다. 그랬으면 오히려 더 퍼포먼스를 잘 냈을수도..

 

 

아무튼 지금은 그래서 머리아픈 상황 없이 건강하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여전히 카페 근처를 지나거나 아침에 커피 내리고 있는 오피스 지나다니다보면 그 강렬함에 '아 이제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또 기나긴 카페인 사이클에 휘말릴 것 같아서 좀 더 참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더이상 카페인에 의존하지 않는 진짜 '기호' 식품으로만 커피를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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