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프로포즈를 해야 하는 것인가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결혼으로 넘어가는 합의를 진행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그대로 '프로포즈' 하는 것. 결혼하자고 하고 승낙을 받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연애를 하다가 보면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식장을 알아보고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에 가까워서 프로포즈를 하는 문화가 어느샌가 퍼져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결혼식장까지 다 잡고서 프로포즈를 하는 것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아서, 형식상으로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하는 프로포즈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결혼하자고 요청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러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비디오에서도 종종 보이는 어느 평범한 날에 집에서, 바에서, 하이킹을 하다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는, 여자는 입을 틀어막고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그런 클리셰같은 프로포즈가 하고 싶었다. 물론 간혹 오해가 생겨서 신발끈 묶으려고 앉았다가 입을 틀어막는 비디오를 본 것도 같지만 어쨌든 프로포즈를 시작으로 결혼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면 이제 반지를 구해야할 것 같은데, 이 부분도 참 고민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Three months salary rule'이라는 나름의 반지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상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간단히 얘기해서 프로포즈 반지 예산을 세달치 월급으로 정하면 적당하다 라는 이야기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브랜드 반지로 해야할까? 다이아몬드반지를 사야할 것 같은데 (슬쩍 커플링인척 운을 떼어보니 금보단 다이아를 확실히 선호하길래 다이아로 정했다), 그럼 자연산을 할까 랩그로운을 할까? 캐럿 크기는 어느정도로 할까? 여러가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거기에 여느 블로그글에서 보이듯 반지 재질 (화이트골드, 로즈골드, 플래티넘), 반지 커팅, 다이아의 레벨 (color, clarity) 등 여러 날을 공부하면서 내가 어떤 반지를 사고 싶은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아나갔다.
결론적으로 나는 제목에 썼듯 티파니에서 구매를 했고, 0.3 캐럿 (3부) 다이아, 반지는 플래티넘으로 구매를 했다. 평소에 여자친구가 명품, 사치품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고 워낙 수수하게 다니는 스타일이라 반지만큼은 브랜드 아이템으로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여러 블로그 글들을 검색을 해보니 3부가 보통 많아보였다. 아니면 내가 3부만 보고싶어서 그런걸수도 있다. 나름대로 합리화한 것은 아내 될 사람이 나처럼 실험실에서 장갑을 끼고 일을 해야해서 다이아가 커지고 뽈록 튀어나올수록 장갑이 쉽게 찢어지거나 혹은 자주 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데일리로 끼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그래도 예쁜 크기가 3부 같아보였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등급까지 정하고나니 대충 생각했던 가격대보다 약간 높게 나온정도로 견적이 나와서 그대로 구매를 진행했다.
티파니 샵을 가서 직접 가져왔으면 좋았겠으나, 촌동네에서 티파니 샵이 있을리 만무하고, 시카고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가 부담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배송을 시켜야 했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배송시켜본 가장 비싼 물건이 되어버렸다. 티파니 공홈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이 또 안되고 해당 반지는 전화로 구매가 가능하다길래 어느 평일 낮에 실험하다말고 나와서 전화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반지에 새길 Marry me? 라는 문구까지 정했고, 다행히 안전하게 배송추적과, 본인확인까지 거친 후에 반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프로포즈 후기
반지를 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줄지를 고민을 많이 했다. 본인 입으로 서프라이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긴했는데, 장미를 깔아야하나? 양초로 길을 만들어야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다가 어느 평일 저녁에 갑자기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주게 되었다. 그 날은 여자친구가 운동하러 나가기 싫다고 유독 칭얼거리던 날이었다. 나는 혼자서라도 바깥에 나가서 운동을 종종 하곤 하지만 여자친구는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잘 나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운동을 나랑 같이 해보려고 애쓰던 와중이었다. 한 3주쯤 이렇게 매주 한 번씩 운동을 하러 나가다가 그 다음 번엔가 실험실 일이 힘들었는지 제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우리 빡세게 운동 안해도 되니까 체육관 찍고만 오자 그러면 가서 물만 마시고 와도 성공이다 라고 하면서 데리고 나가려고 했었다. 그래도 영 안내키는지 주저하다가 '그럼 나한테 1달러를 체육관 다녀와서 주면 이걸 보상이라 생각하고 다녀오겠다' 라는 귀여운 제안을 하기에 냉큼 알겠다 하고 겨우겨우 체육관에서 트랙 몇바퀴를 걷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쉬면서 자 약속했던 1달러를 달라고 하기에 내가 1달러 말고 이건 혹시 어떻겠냐고 하면서 준비한 반지를 내밀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앞으로 우리가 함께하면서 오늘 같이 힘든 날들이 많이 있을텐데, 나는 그런 너의 힘든 시간에 이런 반지같은 소중한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옆에 남고 싶다' 라고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덧붙여서 이렇게 아무 기념일도 아닌 어느 평일 저녁에 주는 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수많은 평범한 날들이 내가 오늘 반지를 주면서 특별해졌듯,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주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여자친구는 이에 흔쾌히 승낙을 해줬고, 그 날 부터 우린 열심히 결혼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